구체관절인형 작가 이재연은, 예쁘기만 한 대량생산형 인형의 얼굴에 결핍된 감정을 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굳이 8등신 미인의 몸매로 인형을 만들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미묘하게 비례가 어긋난 몸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의 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구체관절인형의 매력은 그의 손을 거치며 더욱 도드라진다.
화가 안미선은, 유리구슬처럼 맑은 고양이의 동공 속에서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비상을 꿈꾸는 이의 눈빛을 본다. 겁이 많아 집밖 출입은 엄두도 못 낸 자신의 고양이 완두가 안타까웠던 작가는, 꽃으로 가득한 이상향을 그린 다음 고양이를 그림 속으로 들여보냈다. 고양이의 여유로운 모습과 호기심 어린 표정이 세밀화에 생생하게 담겨, 금세 기지개를 켜며 그림 밖으로 뛰쳐나올 듯 생생하다.
도예가 조은정은, PC통신 시절부터 인터넷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메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백 수십 마리의 길고양이를 구조해 입양 보낸, 길고양이의 대모이기도 하다. 작가를 스쳐 간 수많은 고양이의 기억을 검은색 하나만으로 풀어낸 모습은, 마치 수묵화의 변화무쌍한 농담을 보는 듯하다. 그의 그림 가운데 유독 검은 고양이 그림이 많은 것을 보면, 까만 얼굴 한가운데 장난스런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는 고양이가 작가의 분신임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대형 접시로 만든 고양이의 요람. 고양이의 시원한 여름 침대로 적당하다.
화가 성유진은,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고양이 인간을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평소 감정을 속으로만 삼키는 데 익숙했던 작가는, 장난꾸러기 발리니즈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억눌렸던 감정을 조금씩 풀어냈다. 그래서 그에게 고양이는 특별한 존재다. 그림에 영감을 주는 모델이기도 하고, 자신이 우울감에 힘겨워할 때 세상 밖으로 이끌어 준 친구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투쟁을 계속하는 고양이 인간의 모습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강렬한 생명력을 발하는 눈동자다. 대학생 시절 불교미술을 전공했던 성유진은, 고양이 인간의 눈동자를 만다라 삼아 수많은 선으로 가득 찬 형상을 반복해 그리면서 마음의 평안을 구한다. .
일련의 그림 속에 묘사되는 눈동자의 반복은, 내적 각성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마음의 갈등과 투쟁을 매순간 반영하는 성유진의 고양이 인간은, 작가 자신의 마음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도구가 된다.
디자이너 박활민은, LG텔레콤 카이 홀맨 캐릭터부터 촛불소녀까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최근 관심을 갖는 것은 산업 사회를 활성화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정신의 불균형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삶 디자인’이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티베트에서 네팔로, 다시 인도를 거치며 3년을 보낸 박활민은, 티베트와 인도 여행길에 만난 길고양이에게서 명상하는 듯한 모습을 발견하고 평화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귀국 후 삶에 대한 생각을 담은 고양이 엽서를 그려 온라인의 바다로 띄우고 있다. 현재 하자센터 내에 커뮤니티 카페 ‘하하허허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귀국 후 삶에 대한 생각을 담은 고양이 엽서를 그려 온라인의 바다로 띄우고 있다. 현재 하자센터 내에 커뮤니티 카페 ‘하하허허카페’를 운영하고 있다.조각가 홍경님의 초기작에서 고양이 가면을 쓴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나무사람은, 점차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이 담담해질수록, 나무사람은 마음속 깊이 아픔을 억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의 심연에 억눌려 있던 감정은, 어느 순간 원초적인 동물의 형상이 되어 나무사람의 몸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그 무엇’을 상징하는 동물들의 형상은, 작가가 천착해 온 주제인 ‘말의 무게’와 맞닿아 있다. 16년간 함께 살았던 고양이 방울이와 사별한 작가의 기억도 갈라진 나무의 상처 어느 틈새에 배어있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미세하게 갈라졌다가도 다시 몸을 추스르는 나무처럼, 홍경님의 조각은 상처를 기억하고 스스로 치유해나간다.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캣은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재학 중이던 2000년부터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 중세 채색 필사본을 보며 장식화의 매력에 매료된 작가는 동남아시아와 이슬람권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그림에도 이국적인 느낌이 자연스럽게 배어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주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창작 공간 ‘문래창작촌’에 나무집을 짓고 고양이 다섯 마리와 함께 살며 그림을 그린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 그의 그림 속에도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고양이는 로봇 버스가 되어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거나,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나는가 하면, 실크햇을 쓴 마법사가 되어 멋진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모헤어 인형작가 권유진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모헤어로 앙증맞은 고양이 인형을 만든다. 펠트공예의 재료로 쓰이는 모헤어는 양모의 일종이다. 모헤어를 표면에 미세한 홈이 있는 바늘로 수차례 찌르면, 솜털처럼 가느다란 털실 가닥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단단히 뭉쳐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아름다운 색감을 지닌 모헤어 인형은 고양이 특유의 포근한 느낌을 잘 표현해준다. 나라 요시토모의 악동처럼, 순진함과 영악한 표정이 공존하는 인형의 표정에 고양이의 성격이 그대로 담겨 웃음을 자아낸다.
'고양이도 음악 좋아해요'라는 재미난 제목이 붙은 인형.
금속공예가 신유진은, 의지할 곳 없는 길고양이가 안쓰러운 마음에 하나둘 입양하다 10마리가 되자, 결국 마음속 꿈이었던 샴 고양이를 키울 수 없었던 사연이 있다. 그래서 그는 샴 고양이의 모습을 닮은 장신구를 만들어 간직했다.
고양이를 테마로 한 은점토 공예와 칠보공예에 주력하는 작가는 샴 고양이의 특성을 살려 발끝이 까만 ‘S라인 샴고양이’를 비롯해, 칠보 공예로 아름답게 장식한 ‘봄 고양이’, 고양이의 특성을 기하학적인 원과 선의 형상으로 고양이의 특징적인 외모를 묘사한 ‘고양이로구나’ 장신구 등을 통해 고양이의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유재선은, 페르시안 고양이 제이와 함께 살며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쿠션을 만든다. 그는 빈티지 인형을 파는 인형가게 사장님이자, 오래된 그림동화책과 잡지를 수집하는 고서점 주인이기도 하다. 그가 좋아하는 고양이와 빈티지 인형의 요소가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고양이 쿠션이다.
작가는 고양이를 의인화한 복고풍 캐릭터를 그리고, 그들의 손에 빈티지 인형과 소품을 안겨줬다. 오뚜기 인형을 안은 고양이 소녀, 복고풍 뿔테안경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1970년대 올드스쿨 스타일의 고양이 쿠션이 하나둘 탄생했다.
작가는 대중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문구류와 지류 상품을 개발해 많은 사람들과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유재선은 작업실 근처로 찾아오는 길고양이 세 마리에게 밥을 챙겨주는 ‘고양이 삼촌’이기도 하다.
도예가 김여옥은, 고양이 몸의 아름다운 곡선에 반해 그들의 실루엣을 흙으로 빚어 왔다. 사람들이 고양이의 매서운 눈빛을 무서워하는 게 안타까웠던 작가는, 누구나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눈을 감고 사색하는 고양이의 모습을 만든다. 굳이 눈을 표현하지 않아도 고양이 몸의 곡선 자체가 워낙 아름답기에, 고양이의 실루엣을 부각시킨 것이다.
최근작에서 작가는 단독으로 전시되던 고양이 부조 작품에 ‘창틀’이라는 요소를 추가로 부여하였다. 이로써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과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네모난 창 하나에 고스란히 담긴다. 또한 작가는 화려한 유혹을 상징하는 양귀비꽃을 날개 삼아 고양이의 몸에 달아준다. 그래서 그의 작업실 이름도 파피캣(poppycat)이다.
전시장 전경. 다채로운 고양이 테마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좋다^^
출간기념전 입구에서 '작업실의 고양이' 견본도서도 볼 수 있다.
산토리니서울 2관에서는 김경화, 김하연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설치미술가 김경화는, 수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 조각으로 전시장을 뒤덮는 스펙터클한 설치작업을 즐겨 해왔다. 작가에게 길고양이란,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오래된 것의 가치가 폄하되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것들의 상징이다. 산업사회의 부산물인 시멘트와 폐콘크리트로 만든 고양이가 전시장을 가득 채운 모습은 압도적이다.
발로 건드릴까 싶어 조심조심 아래를 살피며 걷다 보면, 길고양이 조각 사이로 지뢰처럼 촘촘히 심어둔 작가의 의중이 밟힌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과 가까이 마주할 때,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인간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는 작가가 수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우리 곁으로 불러낼 때 의도했던 효과이기도 하다.
사진가 김하연은 길고양이, 남자, 도시를 각각의 대주제로 삼은 연작 사진을 찍고 있다. 특히 신문사 지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새벽 신문배달 중에 마주치는 길고양이는, 그에게 소중한 모델이 됐다.
산토리니서울 1관을 나와 카페를 지나면, 고양이미술관이 보인다. 김래환 씨의 설치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 맞은편 산토리니서울 3관에서는 '작업실의 고양이' 출간 기념 사진전도 함께 열리고 있다.
작가당 2점씩, 총 30점을 전시하고 있다.
책에 실린 사진 외에도 미공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고양이에 대해, 또 나만의 작업실을 꾸리는 일에 대해
관심있는 분은 보러 오시길^^ 4월 10일까지는 오후 10시까지 전시하고, 마지막 날인 11일은 오후 6시 이후
작품을 철수한다. 산토리니서울 옆 트롱플뢰유 미술관에서도 재미있는 상설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홍대앞 나들이를 나왔다가 두루두루 들러봄직하다. (http://bit.ly/gs8o4M에서 사진과 글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 책표지 클릭하시면 책 정보로 이동합니다^^ 알라딘에서 4월 5일까지 구매시 1천원 추가적립금,
고양이수첩 증정(소진시까지) 이벤트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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