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주 무대로 살아가는 길고양이 담양이를 만나러 가면, 가끔 독특한 기마자세로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가랑이를 떡 벌려 담벼락을 말 타듯 걸터앉은 모습이
엉뚱하기도 하고 귀여워서, 처음에는 웃음이 났습니다.
“담양아, 뭐해? 그 자세가 편하니?” 하며 조심조심 다가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담양이의 앉은 모습을 자세히 보니, 담 저편으로 넘어가 잘 보이지 않던
오른쪽 뒷다리는 사실 담벼락 위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 다리는 담벼락 위에 그대로 두고, 한쪽 다리만 담벼락 아래로 늘어뜨린 것입니다.
‘음...저 자세는 편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며 가만히 보니, 담 아래로
늘어뜨린 왼쪽 뒷다리는, 평소 담양이가 살짝살짝 절며 다니던 그 다리입니다.
그제야 담양이가 왜 기마자세로 앉아서 틈틈이 쉬곤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네 다리로 몸을 받치고 있으면 아픈 쪽 다리가 쉬 피로해져서, 한쪽 다리를
늘어뜨려 하중을 덜 받게 해주려던 것이지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렇게
담양이는 자구책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늘어뜨린 담양이를 보니
예전에 굽 있는 구두를 신었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허리가 쉬 피로해지다보니
굽 높은 신발을 신지 못하는데, 하루는 정장을 입고 나가야할 일이 있어
5cm 굽이 달린 구두를 신고 외출을 했었죠. 나중에는 허리가 뻑뻑해져서 힘들었는데,
계단을 올라갈 때 뒷굽을 딛지 않고 신발 바닥만 계단 끝에 걸쳐지게 해서 올라가니
굽이 영향을 미지지 않아서 덜 힘들더라고요. 어찌나 굽을 떼어내고 싶던지,
그 뒤로 어지간해서는 굽 있는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때 저도 뒷굽을 딛지 않는 방법으로 허리 부담을 덜어줬던 경험이 있어서,
담양이의 독특한 기마자세도 이해가 가더군요. 기마자세에 얽힌 사연을 알고 보니
구부정한 담양이의 등허리가 새삼 눈에 들어옵니다. 보이지 않는 삶의 무거운 짐을
가느다란 고양이 허리에 얹은 듯한 묵직한 모습이 마음에 걸려 내내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건강한 네 발로 버티기에도 버거운 세상의 무게를 세 발로 버텨야 한다는 것,
맨몸뚱이 하나가 전 재산인 길고양이에게 아픈 다리는 적지 않은 부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몸을 지혜롭게 쉬게 하는 담양이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한동안 기운을 충전한 담양이는 구부정한 등허리를 펴고 일어나 다시 제 갈 길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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