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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도시 속 길고양이의 삶, 3년간의 기록

by 야옹서가 2005.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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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 2005.12.5] 고양이만큼 인간의 선호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동물도 드물다. 어떤 이는 도도하고 독립적인 성향, 은근한 애교 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한다. 반면 어떤 이는 개처럼 살갑게 굴지 않아서, 혹은 고양이 특유의 가느다란 동공이 무섭다며 싫어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길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삶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먹을 것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인간의 편견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철없는 아이들에게 공격을 받아 한쪽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절게 된 고양이들도 간혹 눈에 띄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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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사냥하기도 마땅치 않은 도시에서, 이른바 ‘길고양이’로 불리는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고양이에 대한 편견과 열악한 생존 조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사진으로 돌아보려는 생각에서 길고양이 기록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른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찍은 경우를 제외하면, 의식적으로 길고양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여름 무렵부터다.
그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만난 도시의 길고양이들은 두 부류다. 첫 번째는 사람이 눈에 띄면 곧바로 경계하면서 잽싸게 도망가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녀석들이다. 척 봐도 관록이 제법 쌓인 '왕고양이'인 경우가 많다. 눈치 100단에, 온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남겨져 있다.
녀석들은 앞발로 솜씨 있게 쓰레기봉투를 뜯고 먹을 만한 것을 잽싸게 골라내어, 안전지대로 가져가 먹는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본다면, 주택가 근처 주차된 차 밑에서 뭔가 오독오독 씹고 있는 길고양이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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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에는 음식쓰레기 분리수거제도가 정착되면서, 쓰레기봉투를 뒤져도 별 소득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어쩌다 운 좋게 먹을거리를 구하더라도, 대개 상하거나 못 먹을 음식이 대부분이다. 특히 버려지는 음식들은 인간의 입맛에 맞춘 것이라 염분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고양이의 신장이 쉽게 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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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먹을 것이 부실하다 보니 길고양이들의 건강도 좋을 리 없다. 건강한 집고양이가 평균 15년을 사는 것에 비하면,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길어야 2~3년으로, 집고양이의 5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사고사를 당하기도 하고, 포획되어 안락사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길고양이라 하더라도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또한, 통제하기 힘든 잦은 임신과 출산 역시 고양이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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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게 되는 두 번째 부류의 길고양이들은 앞서 소개한 ‘산전수전 다 겪은 고양이들’보다 좀 더 명랑하고 곰살궂다. 비록 꼬질꼬질한 털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붙임성이 있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자유 고양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고양이들은, 자신에게 호의를 지닌 사람들을 용케 알아보고 반 정착 상태로 근처에 머문다. 어떤 길고양이들은 대로변에 떡 버티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상하거나, 에웅거리며 몸을 부벼대기까지 한다. 카메라를 들이밀면 도망은커녕, 흥미롭다는 듯 렌즈에 코를 들이미는 녀석도 있다. 고양이의 당당함과 자유로움, 호기심 많은 성향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존재가 이런 길고양이들이다. 이들을 보살피는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고양이를 보며 기쁨을 느끼고, 반 정착 상태로 돌아선 길고양이는 일시적이나마 안정적인 식량 공급처를 확보하면서 둘의 공존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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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과 동물은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길고양이 중에 마음 맞는 녀석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경우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들 고양이 무리는 가족 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일종의 ‘대안 가족’으로 구성될 때도 있다. 자동차 밑에 옹송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고양이 무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론 귀엽지만,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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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많은 길고양이들은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간이 키우다 버린 고양이들도 있을 테고, 집을 나간 고양이들이 번식해서 저만큼 불어난 것일 수도 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길고양이 역시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야할 생명이다.
보호해야할 생명체가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고양이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고, 내 주변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수달을 사랑하는 사람은 수달 보호 운동에 뛰어들어도 좋을 것이고, 멸종 위기에 처한 반달곰이 안쓰러운 사람은 반달곰 보호 운동에 나서면 된다. 그 대상이 내게는 고양이일 뿐이다.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고 보호하고 싶은 동물을 마음속에 지닌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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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공원에 가면, 사람들 사이를 거닐면서 당당하게 먹이를 받아먹는 고양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마네키네코’라는 불리는 복고양이 인형까지 존재하는 일본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또 다른 예도 있다.

1998년 9월 무렵의 일이다. 지금은 폐간된, 다큐멘터리 사진 잡지 《GEO》에서 ‘그리스의 고양이-구속받지 않는 사랑’이라는 특집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스 미코노스 섬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미코노스 섬 주민들은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만 가두지는 않는, 자유로운 사랑을 베푼다. 그리스의 길고양이는 불규칙한 높낮이를 지닌 하얀 담벼락, 새파란 바다와 더불어 마을을 구성하는 한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길고양이들은 자유롭고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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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길고양이를 해충처럼 없애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면 어떨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지나친 개체 번식을 제어하기 위한 길고양이 불임 수술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길고양이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활보하는 모습이 좋다. 인기척이 나면 잽싸게 도망가는 고양이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당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를 멋대로 ‘도둑고양이’라 부르며 미워하지만, 길고양이도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애쓸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어느 밤거리를 헤매고 다닐 고양이들에게, 기운 내라고 등허리라도 다독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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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블로거뉴스로 발행했던 원문 링크]

https://blog.daum.net/forestcat/454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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