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포장할 때 쓰려고 버리지 않고 옷장 위에 올려둔 상자가 하나 있다. '궁중후라이팬'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적힌 초록색 상자인데, 요즘 제품 포장디자인에는 어지간하면 쓰지 않는 서체인 휴먼옛체를 쓴 데다 '프라이팬'도 아니고 '후라이팬'이라고 버젓이 인쇄해놓은 것을 보면 꽤나 오래된 물건인 듯하다.
원래 옷장 위에 둔 상자인데, 전시 준비하면서 액자 포장할 때 쓰려고 잠시 내려놓았다가 크기가 안 맞아 다시 올려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밀라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있나. 기어코 책상으로 폴짝 뛰어올라가더니 조심스레 냄새를 맡고는 상자 위로 올라간다. 오래간만에 얻은 새 상자를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옷장 꼭대기에서 책상 쪽으로 뛰어내릴 때면 높이 차이가 제법 나서 완충장치 역할이나 하라고 한동안 책꽂이 위에 깔아놓았더니 뛰어내릴 때마다 발판으로 써서 북처럼 퉁 소리가 난다. 속이 텅 빈 상자라서 그런 듯. 급기야 상자 한가운데가 우묵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스밀라는 신이 났다. 상자는 평평한 것보다 우묵한 게 좋으니까. 미묘하게 우묵해진 상자 위에 몸을 누이고 제 침대로 쓰고 있다. 궁중의 분위기와는 별 상관없는 상자지만 스밀라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누워있다. 만족스러워진 스밀라가 내게 고양이 키스를 보낸다. 꿈-뻑, 하고 느릿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는 것인데, 사진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고양이 키스를 동영상으로도 찍어보았다.
(총 38초짜리 동영상이지만 처음에는 스밀라가 꼬리를 흔들흔들하는 모습만 나오니 25초부터 봐도 상관없음)
아침이 되면 저렇게 옷장 위로 올라가 턱을 괴고 이쪽을 내려다보거나 낮잠을 잔다. 옷장 위에 잡동사니를 두는 게 그닥 보기 좋진 않지만 벽과 옷장 사이의 간격이 10cm 정도 되는지라, 옷장 위를 비워두면 틈새로 빠질 우려가 있어서 물건을 두는 게 안전하다. 스밀라와 함께 한가롭게 아침 햇빛을 맞이하는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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