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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씨앗 배달부'가 된 길고양이

by 야옹서가 201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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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다 보면, 남몰래 씨를 뿌리고 다니는 길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씨앗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뿌리는 건 아니고, 길고양이가 먹이를 구하러 자주 다니는 곳이 풀밭이나 화단 같은 곳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씨앗이 달라붙는 것이다. 도깨비처럼 몰래 사람이나 동물 몸에 붙는다고 해서 이런 종류의 씨앗들을 흔히 '도깨비풀' 씨앗이라고 부르는데, 길고양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씨 뿌리는 고양이가 된 셈이다.

 

어느 풀숲에 머리를 콕 박았다가 얼굴에 달라붙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얼굴에 씨앗을 붙인 채 잠든 녀석도 있고...

 

씨앗이 무더기로 있는 자리를 허벅지로 스윽 문지르고 다녔는지 뒷다리 쪽에 집중적으로 씨앗을 붙이고 다니는 녀석도 있다. 씨앗에는 발이 없기 때문에 더 멀리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동물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러니 씨앗 입장에서는 풀숲을 누비고 다니는 길고양이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길고양이만 씨앗 배달부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풀숲이 있는 곳이라면 마찬가지다. 일본 고양이 여행 중에 이누야마에서 만난 어린 고양이도 씨앗을 여기저기 전파하는 배달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고동색 담벼락 옆에 몸을 착 붙이고 있어서 고양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묘한 보호색을 하고 있지만, 다가가보니 검은색과 밀크티 빛깔의 털이 오묘하게 섞여 흔치 않은 카오스 무늬 고양이다.

청소년 고양이인데, 발아래 자란 풀잎과 비교해보면 조그마한 몸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녀석도 어느 풀밭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 묻혔는지, 턱 아래 앞다리 근처에 풀씨를 잔뜩 묻히고 앉아 있다. 

 

아직 어린 고양이라 그런지 경계심이 강하다. 내가 쉽게 떠날 것 같지 않으니, 자기가 먼저 일어나 자리를 피한다.  저렇게 다니면서 씨앗을 한 톨씩 뿌리고 다닐 테고, 그 씨앗이 자라 또 다른 곳에서 질긴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게 길고양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생태계를 보존시키는 씨앗 배달부 노릇을 이어간다. 언뜻 보면 무보수 노동처럼 보이지만,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고 자연에 다시 보답하는 셈이니 길고양이 입장에서도 그리 억울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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