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여행은 그간 심신이 지친 어머니께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어 떠난 것이었다. 보통 '고양이 여행'을 떠날 때면 고양이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골목 많은 동네를 중심으로 동선을 짜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를 위해 초여름의 제주를 만끽할 수 있는 자연여행을 염두에 뒀다. 혹시 여행 중에 고양이와 만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못 만나더라도 그것대로 좋은, 그렇게 느슨한 여행을 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여행 첫날 성산일출봉에서 행운의 삼색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일출봉을 오르는 동안 어머니도 찍어드리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야생화도 틈틈이 찍고 하면서 쉬엄쉬엄 올라간다. 일출봉은 왕복 50분이 걸린다고 입구 안내문에 적혀 있지만, 초입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도 계단이 시작되면 계속해서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아 그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리곤 했다. 미리부터 체력을 소진할 것 없이 천천히 가자고 생각하며 걷는데, 저 멀리 꼬물꼬물 움직이는 하얀 점 하나. '혹시 고양이?' 싶어 망원렌즈로 당겨찍어 보니 정말 고양이다.
그것도 하얀 바탕에 까맣고 노란 무늬가 점점이 박힌 예쁜 삼색이다. 2002년 7월 화단 고양이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행운의 삼색고양이 덕분이어서, 삼색이들을 보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삼색이를 만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녀석을 지켜보았다.
성산일출봉을 뒤로 하고 서서 몸을 낮춘 모습이, 수풀 속에서 조그만 곤충이라도 발견한 모양이다.
고양이들이 사냥감을 노릴 때 하는 자세로 몸을 낮추고 살금살금 다가간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찍어보려 했더니, 녀석은 기다려주지 않고 사냥감을 따라 풀숲으로 몸을 숨기며 사라져버렸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인사 나누지 못한 게 아쉽지만, 제주에서의 첫날부터 행운의 삼색 고양이를 만났으니 이번 여행은 어쩐지 운이 좋을 것만 같다.
어머니가 멀리서 바위 모양을 보시더니, 저 멀리 산봉우리가 스밀라 옆얼굴을 꼭 닮았다고 웃으신다. 쫑긋 올린 귀와 도톰한 이마, 오똑한 코까지 스밀라를 정말 닮았다. 그래서 저곳은 우리에겐 스밀라 봉. 내년 봄쯤 제주에 유채꽃 필 때, 성산일출봉에 다시 오자고 어머니와 다짐했다. 그때까지 행운의 삼색고양이도, 스밀라 봉도 잘 있기를.
6/26(수) 오후 7시,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 고양이 이야기를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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