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볼일을 보고 나면 꼭 흙을 덮어 파묻는다. 제 냄새를 감추고 적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도시에서는 흙을 찾아보기 힘들어진지 오래다. 그래서 고양이의 눈길이 가는 곳도 도심 속 화단이다. 오래된 골목길엔 크고작은 화단을 만들어 가꾸는 분들이 많기에, 고양이들도 그곳으로 찾아드는 것이다. 화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양이의 선택 폭도 넓어진다.
고양이를 따라 화단 쪽으로 다가가본다.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 열매 아래 숨어들어 볼일을 보던 고양이가 갸웃 하며 얼굴을 내민다. 고양이가 등을 둥글게 세우고 약간 쭈그린 자세로 등을 툭, 툭 털면 큰 볼일을 보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작은 볼일을 보는 게다. 긴장해서 나를 돌아본 바람에 고양이 오줌발도 잠시 멈췄을까.
화단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고양이를 쫒아 들어가기는 어렵고 고양이에게도 민폐일 듯해, 위쪽 계단을 타고 따라가본다. 찰칵 소리에 고양이가 위를 올려다본다. 사람에게 발견되었지만, 적당한 거리가 있으니 쫓아오지 못할 것을 녀석도 안다. 안심한 얼굴이 되어 아까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워진 고양이가 멈춰 서서 나와 눈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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