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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한겨레 ESC칼럼

고양이말 번역가

by 야옹서가 200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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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스밀라는 ‘시간 잡아먹는 고양이’로 통한다. 녀석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깃털 장난감을 흔들거나 털을 빗어 주거나 하다 보면, 한 시간은 뚝딱 지나가 버리니 말이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1년이 넘어가면서, 이제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에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딱 두 가지인 줄 알았다. 평상시의 ‘야옹’ 하는 소리와, 발정기 때의 약간 기괴한 울음소리. 하지만 스밀라 덕분에 어설프게나마 ‘고양이 언어 초벌 번역’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참고로 고양이마다 울음소리에 차이가 있으므로, 우리 집에서 먹히는 번역이 다른 집 고양이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스밀라가 눈을 절반쯤 감다시피 뜨고 ‘앵!’ 하고 짧게 울면, 기분이 좋고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이럴 때 머리와 목덜미·등을 지그시 쓰다듬어 주면 ‘그릉그릉’ 목을 울리는 확실한 애정 표현을 듣게 된다. 또 입을 반쯤 열고 ‘애앵 …’ 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뭔가 뜻대로 안 되거나 실망스러울 때 내는 소리다. 심리적인 갈등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가장 강력한 의사표현 수단으로 ‘고함 지르기’가 있다. 입을 있는 대로 한껏 크게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고, 목소리 톤을 신경질적으로 높여 ‘아아아아아앙!’ 하고 늘여 빼며 사람을 부른다. 판소리를 시켜도 되겠다 싶을 만큼 한 맺힌 목소리다. “인간아, 방에 있는 거 알아. 빨리 나와!” 하는 소리다. 내가 방에서 일하느라 나오지 않고 혼자 거실에서 놀아야 할 때, 누구든 제 상대를 해 주러 나올 때까지 그렇게 고함을 지른다.

스밀라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고양이는 원래 조용한 동물이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한동안 노숙 생활을 하면서 이리저리 치여서 그런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움츠러들곤 했다. 한데 몇 달이 지나고 나니, 이젠 여기가 내 집이다 싶은지 기고만장이다. 뭔가 요구사항이 있으면 거침없이 울음소리로 의사표현을 한다. 덕분에 나뿐 아니라 어머니와 동생까지 고양이 언어를 익힐 정도가 됐다.

개는 사람이 길들인다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길들인다. 갓 빨아놓은 폭신한 이불이며, 드라이클리닝해온 옷까지 깔고 앉아 눈빛 공격을 던지거나, 큰 소리로 호령한다. 하지만 그렇게 길들여지는 삶이 기분 나쁘지 않고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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