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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한겨레 ESC칼럼

비둘기 학살의 공포

by 야옹서가 200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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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지만, 몸에서 솜털이 빠질 무렵이면 시련이 시작된다.

사간동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산비둘기 새끼를 만났다.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몸에서 솜털이 슬슬 빠지고 깃털이 자라나면 시련이 시작된다. 어미는 더 새끼를 돌보지 않고 매정하게 내버려둔다. 한때는 귀여웠을 솜털이 지저분하게 너덜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미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닐 시점은 이미 지난 청소년 비둘기인 듯했다.

한데 사람이 눈앞에 다가와도, 화분 그늘에 숨어 있던 녀석은 도무지 달아날 기색이 없다. 어딘가 불편한 듯 작은 몸을 움찔거릴 뿐이다. 새끼 비둘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의 깃털이 성글게 빠져 있고, 눈과 눈 사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쭉한 상처가 있다. 상처가 꽤 깊이 팬 걸 보면, 날기 연습을 하다가 호되게 추락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아니면, 아직 제구실을 못하는 날개만 믿고 방심한 채 나다니다가, 길고양이의 날카로운 앞발에 찢긴 것이거나.

어찌됐건 몸이 성치 않은데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있으면 험한 일을 당할 것 같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옮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을 가까이 가져가니, 녀석은 잔뜩 긴장해서 가슴을 부풀린다. 숨을 할딱할딱 쉬며 갈등하는가 싶더니, 무거운 제 몸 아래 깔린 두 발에 힘을 준다. 방심한 자세로 땅에 놓여 있던 발가락도, 뭔가 움켜쥐기라도 할 것처럼 잔뜩 힘줘 오그라든 모양새로 변했다.

다급하게 울거나 날개를 퍼덕이는 대신, 녀석은 침묵하며 제 앞에 선 거대한 인간을 향해 온몸으로 “나를 건드리지 마!”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공포와 불안에 떠는 발끝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게 녀석을 위하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이제 곧 겨울인데, 비둘기를 ‘닭둘기’라며 싫어하는 사람들을 피해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서울시는 지난 10월19일 “도심 비둘기를 유해 조류로 분류하고,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도록 ‘야생 동식물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포식자가 없는 도심에서 비둘기 개체 수가 점차 늘어난 탓이다. 하지만 잇따른 법 개정이 ‘비둘기 대학살’의 명분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효과는 좀 더디지만 먹이에 불임 약을 섞어 뿌리거나, 맹금류를 닮은 야광 눈이 달린 풍선을 설치해 비둘기를 쫓아도 효과가 쏠쏠하단다. 살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비둘기의 절박함을 본 적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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