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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지만, 몸에서 솜털이 빠질 무렵이면 시련이 시작된다.

사간동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산비둘기 새끼를 만났다.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몸에서 솜털이 슬슬 빠지고 깃털이 자라나면 시련이 시작된다. 어미는 더 새끼를 돌보지 않고 매정하게 내버려둔다. 한때는 귀여웠을 솜털이 지저분하게 너덜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미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닐 시점은 이미 지난 청소년 비둘기인 듯했다.

한데 사람이 눈앞에 다가와도, 화분 그늘에 숨어 있던 녀석은 도무지 달아날 기색이 없다. 어딘가 불편한 듯 작은 몸을 움찔거릴 뿐이다. 새끼 비둘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의 깃털이 성글게 빠져 있고, 눈과 눈 사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쭉한 상처가 있다. 상처가 꽤 깊이 팬 걸 보면, 날기 연습을 하다가 호되게 추락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아니면, 아직 제구실을 못하는 날개만 믿고 방심한 채 나다니다가, 길고양이의 날카로운 앞발에 찢긴 것이거나.

어찌됐건 몸이 성치 않은데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있으면 험한 일을 당할 것 같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옮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을 가까이 가져가니, 녀석은 잔뜩 긴장해서 가슴을 부풀린다. 숨을 할딱할딱 쉬며 갈등하는가 싶더니, 무거운 제 몸 아래 깔린 두 발에 힘을 준다. 방심한 자세로 땅에 놓여 있던 발가락도, 뭔가 움켜쥐기라도 할 것처럼 잔뜩 힘줘 오그라든 모양새로 변했다.

다급하게 울거나 날개를 퍼덕이는 대신, 녀석은 침묵하며 제 앞에 선 거대한 인간을 향해 온몸으로 “나를 건드리지 마!”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공포와 불안에 떠는 발끝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게 녀석을 위하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이제 곧 겨울인데, 비둘기를 ‘닭둘기’라며 싫어하는 사람들을 피해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서울시는 지난 10월19일 “도심 비둘기를 유해 조류로 분류하고,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도록 ‘야생 동식물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포식자가 없는 도심에서 비둘기 개체 수가 점차 늘어난 탓이다. 하지만 잇따른 법 개정이 ‘비둘기 대학살’의 명분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효과는 좀 더디지만 먹이에 불임 약을 섞어 뿌리거나, 맹금류를 닮은 야광 눈이 달린 풍선을 설치해 비둘기를 쫓아도 효과가 쏠쏠하단다. 살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비둘기의 절박함을 본 적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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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epial
    2008.04.27 04:32

    늘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동물 탓을 하는 게 속상해요....
    열마전에 근처에서 또 개코원숭이가 소풍나온 어린이들을 습격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 어린이와 가족은 물론 아무 잘못도 없지만,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먹을 것을 주고 간 관광객, 음식 보관을 소홀히 하는 이웃들 덕분에
    원숭이들이 잘못된 학습을 한 것이 원인이겠죠.

    동물 보호에 아주 적극적인 남아공이건만.....
    이런 일이 한번씩 생기면 원숭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가하는 사람들이 또 한번씩 동기부여를 받곤 해요......
    암튼...저도 비둘기를 정말 좋아하지는 않지만......그 대책이라는 것들이 정말.....씁쓸합니다.

    • BlogIcon 야옹서가
      2008.04.27 23:54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비둘기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된 걸까요.
      평화의 사절이 어쩌고저쩌고 할 때는 언제고-_-;
      비둘기 성격이 좀 탐욕스럽다고는 하지만..뭐 그렇게 구박과 멸시를 받을 만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그나저나 개코원숭이가 어린이를 습격하다니, 먹을 거라도 들고 있었나봐요? 엄마 입장에선 속상하겠지만, 또
      그렇다고 '원숭이를 타도하자' 할 수는 없는 일인데...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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