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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한쪽 눈 잃은 길고양이의 세상보기

by 야옹서가 2008. 5. 2.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 중에서 눈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인간에게 학대를 당해 눈을 다치는 경우도 있지만, 영역을 지키며 몇 마리씩 무리지어 사는 고양이의 경우, 한 마리가 눈병을 앓으면 빠른 속도로 전염되기 쉽다. 눈물이 줄줄 흐르거나 눈곱이 심하게 낀 고양이라면 십중팔구 결막염에 걸린 것이다. 길고양이끼리 싸우다 각막에 상처를 입고 낫지 않은 채 방치되면, 찢어진 각막 속의 내용물이 흘러나와 결국 실명하고 마는 '각막천공'이란 병에 걸리기도 한다. 

늘 건강하고 활기찼던 밀레니엄 고양이들도 지난 겨울 눈병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얼핏 보기에도 눈이 편치 않은 고양이가 서너 마리다. 밀레니엄 고양이 무리에서 왕초 노릇을 하는 고등어무늬 고양이는 오른쪽 눈이 일그러져 제대로 볼 수 없는 듯하고, 흰자위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사시처럼 눈동자가 돌아간 고양이가 두 마리다. 그리고 아직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 고양이 하나는 한쪽 눈을 완전히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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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발로 안과를 찾아갈 수도 없고 왕진을 와 줄 선생님도 없는 길고양이들은, 병을 앓아도 자연의 치유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무사히 나으면 다행이지만, 회복되지 못한 채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산이라곤 몸뚱이 하나뿐인 길고양이가 한쪽 눈을 잃는다면 공간을 지각하는 데도 불리할 뿐더러, 먹이 다툼에서도 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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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세 마리 고양이 중에, 제법 나이가 든 듯한 두 마리는 눈앞에 사람이 얼쩡거리든 말든 심드렁하게 누워 햇볕 쬐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나는 고양이 한 마리는 가까이 다가온 인간을 자세히 보려고 몸을 곧추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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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만 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내려다보는 품이, 제 눈에 비친 새로운 대상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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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을 맞추는 길고양이의 꼬질꼬질한 얼굴에 신산스런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하지만 까맣고 커다란 눈망울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반짝였다.  낯선 인간과 당당히 눈싸움을 할 만큼 배짱 있고, 명당자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도 밀리지 않는 녀석이라면, 텃세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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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윙크하는 길고양이를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해 주세요~


혹시 길을 가다 한쪽 눈을 잃은 길고양이를 만난다면, 무서워하거나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았으면. 그 고양이도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테니까. 한쪽 눈이 없는 고양이를 만나면, '저 고양이는 눈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기보다 '아, 나에게 살짝 윙크하네^^' 하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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