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마다 늘 하는 다짐이 있다. ‘올해는 좀 버리면서 살아야지.’ 공간 정리 전문가 캐런 킹스턴은 써야 할 물건과 버려야 할 물건을 가리는 기준은 ‘1년 동안 이 물건을 썼는가, 쓰지 않았는가’라고 한다. 1년 동안 한번도 쓰지 않은 물건이라면, 앞으로도 결코 쓰지 않을 물건이니 버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버려야 할 것들로 가득 찬 창고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있는 것을 내다 버려도 모자랄 판에, 버려진 책이나 인형이 보이면 어쩐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덥석 줍고 마니, 이것도 고질병이다 싶다. 헌책을 주워 읽다 보면, 속표지에 사랑 고백이나 축하·격려 말을 적어놓은 책이 눈에 띄는데, 그런 책을 보면 그 글씨의 주인공이 상상되어 마음이 스산해진다.
분리수거 전날 밤이면 운동도 할 겸, 폐지로 버려질 책도 구제할 겸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곤 하는데, 하루는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하다가 기이한 광경을 봤다. 재활용품을 분리해 가득 쌓아둔 가로등 아래, 조그맣고 누런 것이 줄에 묶여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종을 알 수 없는 잡종 강아지였다. 발작적으로 심하게 떠는 모습을 보니, 추운 것보다 중병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경비 아저씨는 ‘누군가 와서 묶어놓고 갔는데 한참 지나도 찾아가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세상에, 개도 분리수거 품목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니. 키우던 개를 분리수거장에 버리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지, 어지간한 상상력으로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기르던 동물을 내버리는 사람들이 자기합리화처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야생에서 자유를 누리는 게, 갇혀 사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실내 생활에 길들여진 동물한테, 거리 생활은 자유가 아니라 공포일 뿐이다. 게다가 지난달 27일부터 적용된 새 동물보호법에서, 유기 동물은 보호소에 10일 계류 뒤 안락사를 시키도록 했다. 종전의 계류 기간이 30일이었으니, 버려진 동물들이 한층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버려진 동물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서울시에서는 2009년 4월부터 애완견 마이크로칩 이식을 의무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칩은 피하 지방에 넣는 따닭에 피부를 가르지 않으면 꺼낼 수 없단다. 원래 취지대로 정착만 된다면 무책임하게 개를 버리는 사람도 줄고, 부주의로 개를 잃어버렸을 때도 찾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록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cats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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