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도쿄의 진보초 헌책방거리에 갔을 때, 고양이가 등장한 깜찍한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고양이가 광고모델을 맡은 헌책시장이라... 게다가 시내 한복판인 신주쿠 케이오백화점에서 헌책을 판다고? 귀여운 고양이 밀짚모자와 피크닉 바구니, 지도와 책... 여름휴가철에 잘 어울리는 연출이다. 헌책시장에 고양이를 내세운 것도 궁금했지만, 도대체 백화점에서 반짝 열리는 헌책시장이란 어떤걸까 궁금했다.
궁금증이 도져서 꼭 가보고 싶었지만 작년에는 여행 일정이 끝난 뒤에나 헌책시장이 열리는 터라 아쉽게 포기했는데, 올해엔 헌책시장이 열리는 기간을 맞춰 다시 도쿄를 방문했기에 드디어 찾아가볼 수 있었다.
오다큐선 전철 내부에 걸린 케이오백화점 헌책시장 광고. 올해에도 어김없이 고양이가 등장해 헌책시장 홍보대사를 맡았다. 반가운 마음에 쓰다듬고 싶을 정도였지만 너무 높이 매달려 있는 바람에 포기했다.
고양이의 인도를 따라 케이오백화점 신주쿠점 7층에 도착했다. 헌책시장이 열리는 신주쿠점은 도쿄에서도 중심가에 속하는 위치여서, 이를테면 서울의 명동 롯데백화점 같은 느낌. 비록 일주일도 못되는 시간이지만, 땅값 비싼 신주쿠 번화가의 백화점에서 반짝 헌책방이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작년이 57회였고 올해가 58회째이니, 거의 60년 가까이 이런 '백화점 속 헌책시장'이 열려 왔다는 이야기다.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고양이의 모습이 작년에 본 포스터보다 더 귀엽다. 갑자기 이 포스터를 연도별로 수집하고 싶은 충동이;;; 하지만 늘 값비싼 순종고양이만 모델로 선호하는 한국 광고계에서 누군가 이런 포스터 시안을 냈다면, 아마 광고주에게 "이 똥고양이는 뭡니까? 당장 다른 녀석으로 바꿔요!" 라는 호통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수십 곳의 헌책방이 참여해 붉은 이름표를 내걸고 손님을 맞이한다. 서점마다 앞치마를 두른 헌책방 점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름상품 바겐세일 대목을 포기하고 헌책방 공간을 내어준 백화점 측도 놀랍지만, 쇼핑하듯 장바구니를 한손에 끼고 진지한 얼굴로 책을 고르는 사람들도 눈길을 끈다.
미키마우스 가방 한팔에 끼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이 청년은 도무지 헌책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아 보였지만, 고색창연한 서가 앞에서 조심스레 책을 골라 바구니에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역시 헌책방 돌아다니기가 취미이다보니, 얼굴 한번 본적 없는 그 청년에게서 동지의식이 느껴진다.
헌책뿐만 아니라 옛날 포스터, 우키요에 복사본, 엽서 등도 깔끔하게 비닐포장되어 전시 중이다. 시원한 유카타 차림의 아주머니가 책 사이로 잰걸음을 걷는다. 저 아주머니는 원하는 책을 찾았으려나.
백화점 한가운데 헌책방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사라질 수 있는 건, 이렇게 네모난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 책꽂이 대용으로 쓰기 때문이다. 따로 책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분해와 조립 역시 손쉽다. 이사할 때마다 책짐 싸고 푸느라 골머리를 앓았던지라,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지면서도 편리할 것 같은 이 헌책상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헌책방의 매력은 예상하지 못했던 멋진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우연의 즐거움은 여행의 속성과도 비슷하다. 길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골목에서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의 짜릿함 같은, 그런 느낌. 귀여운 동물들을 의인화해 그린 그림책도 있었는데, 예상보다 비싼 값에 망설이다 놓고 온 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역시 여행지에서는 마음이 동할 때 바로 결정해서 사와야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저마다 다른 수집가들의 취향은 끝이 없어서, 뭐 이런 구닥다리를 살까 싶은 생각이 드는 물건들까지도 판매되고 있다. 무려 50년 전 사진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샴고양이의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아, 귀찮게 좀 하지 말고, 이거 놔라" 하는 표정이다.
헌책뿐 아니라 전화카드, 우표, 주화 등을 판매하는 수집상도 있었는데, 저렴한 건 100엔짜리부터 몇만 엔짜리에 이르기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고양이 캐릭터 다얀이 등장하는 이 카드는 원화로 계산해서 한 장당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래도 살 사람은 산다는 거~ 나도 그냥 가기 아쉬워서 고양이 사진이 인쇄된 100엔짜리 전화카드를 몇 장 샀다.
아톰 마니아들에게는 반갑기 그지없을 만화책들이다. 헌책시장을 구경하면서, 우리집 어딘가에도 뒹굴다 버려졌을 수많은 추억의 만화책과 엽서, 우표들을 생각해본다. 이런 이동식 헌책시장에 나오는 물건들은 골동품처럼 아주 비싸거나 시세차익을 노릴 만한 것이 아니기에, 그저 평범한 수집가의 소소한 꿈을 만족시켜줄 따름이다. 그러나 꼭 값비싼 물건만이 소중할까. 헌책시장에서는 어떤 물건이 내게 어떤 추억으로 남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니 내게 케이오백화점은 '추억을 판매하는 백화점'으로 남을 듯싶다. 쇼핑하며 지나쳤던 다른 가게는 다 잊더라도, 백화점에서 열린 깜짝 헌책방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게다가 고양이가 홍보대사로 나선 헌책방이라면 말이다.
궁금증이 도져서 꼭 가보고 싶었지만 작년에는 여행 일정이 끝난 뒤에나 헌책시장이 열리는 터라 아쉽게 포기했는데, 올해엔 헌책시장이 열리는 기간을 맞춰 다시 도쿄를 방문했기에 드디어 찾아가볼 수 있었다.
오다큐선 전철 내부에 걸린 케이오백화점 헌책시장 광고. 올해에도 어김없이 고양이가 등장해 헌책시장 홍보대사를 맡았다. 반가운 마음에 쓰다듬고 싶을 정도였지만 너무 높이 매달려 있는 바람에 포기했다.
고양이의 인도를 따라 케이오백화점 신주쿠점 7층에 도착했다. 헌책시장이 열리는 신주쿠점은 도쿄에서도 중심가에 속하는 위치여서, 이를테면 서울의 명동 롯데백화점 같은 느낌. 비록 일주일도 못되는 시간이지만, 땅값 비싼 신주쿠 번화가의 백화점에서 반짝 헌책방이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작년이 57회였고 올해가 58회째이니, 거의 60년 가까이 이런 '백화점 속 헌책시장'이 열려 왔다는 이야기다.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고양이의 모습이 작년에 본 포스터보다 더 귀엽다. 갑자기 이 포스터를 연도별로 수집하고 싶은 충동이;;; 하지만 늘 값비싼 순종고양이만 모델로 선호하는 한국 광고계에서 누군가 이런 포스터 시안을 냈다면, 아마 광고주에게 "이 똥고양이는 뭡니까? 당장 다른 녀석으로 바꿔요!" 라는 호통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수십 곳의 헌책방이 참여해 붉은 이름표를 내걸고 손님을 맞이한다. 서점마다 앞치마를 두른 헌책방 점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름상품 바겐세일 대목을 포기하고 헌책방 공간을 내어준 백화점 측도 놀랍지만, 쇼핑하듯 장바구니를 한손에 끼고 진지한 얼굴로 책을 고르는 사람들도 눈길을 끈다.
미키마우스 가방 한팔에 끼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이 청년은 도무지 헌책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아 보였지만, 고색창연한 서가 앞에서 조심스레 책을 골라 바구니에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역시 헌책방 돌아다니기가 취미이다보니, 얼굴 한번 본적 없는 그 청년에게서 동지의식이 느껴진다.
헌책뿐만 아니라 옛날 포스터, 우키요에 복사본, 엽서 등도 깔끔하게 비닐포장되어 전시 중이다. 시원한 유카타 차림의 아주머니가 책 사이로 잰걸음을 걷는다. 저 아주머니는 원하는 책을 찾았으려나.
백화점 한가운데 헌책방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사라질 수 있는 건, 이렇게 네모난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 책꽂이 대용으로 쓰기 때문이다. 따로 책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분해와 조립 역시 손쉽다. 이사할 때마다 책짐 싸고 푸느라 골머리를 앓았던지라,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지면서도 편리할 것 같은 이 헌책상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헌책방의 매력은 예상하지 못했던 멋진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우연의 즐거움은 여행의 속성과도 비슷하다. 길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골목에서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의 짜릿함 같은, 그런 느낌. 귀여운 동물들을 의인화해 그린 그림책도 있었는데, 예상보다 비싼 값에 망설이다 놓고 온 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역시 여행지에서는 마음이 동할 때 바로 결정해서 사와야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저마다 다른 수집가들의 취향은 끝이 없어서, 뭐 이런 구닥다리를 살까 싶은 생각이 드는 물건들까지도 판매되고 있다. 무려 50년 전 사진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샴고양이의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아, 귀찮게 좀 하지 말고, 이거 놔라" 하는 표정이다.
헌책뿐 아니라 전화카드, 우표, 주화 등을 판매하는 수집상도 있었는데, 저렴한 건 100엔짜리부터 몇만 엔짜리에 이르기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고양이 캐릭터 다얀이 등장하는 이 카드는 원화로 계산해서 한 장당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래도 살 사람은 산다는 거~ 나도 그냥 가기 아쉬워서 고양이 사진이 인쇄된 100엔짜리 전화카드를 몇 장 샀다.
아톰 마니아들에게는 반갑기 그지없을 만화책들이다. 헌책시장을 구경하면서, 우리집 어딘가에도 뒹굴다 버려졌을 수많은 추억의 만화책과 엽서, 우표들을 생각해본다. 이런 이동식 헌책시장에 나오는 물건들은 골동품처럼 아주 비싸거나 시세차익을 노릴 만한 것이 아니기에, 그저 평범한 수집가의 소소한 꿈을 만족시켜줄 따름이다. 그러나 꼭 값비싼 물건만이 소중할까. 헌책시장에서는 어떤 물건이 내게 어떤 추억으로 남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니 내게 케이오백화점은 '추억을 판매하는 백화점'으로 남을 듯싶다. 쇼핑하며 지나쳤던 다른 가게는 다 잊더라도, 백화점에서 열린 깜짝 헌책방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게다가 고양이가 홍보대사로 나선 헌책방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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