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3. 2001 | 언제, 어떤 시점에서 관찰하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다. 특히 고대 동아시아사는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적 민족적 위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민감하게 취급돼왔다. ‘왜 왕권’이 한반도 남부를 약 2백년 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 설의 근거가 된 광개토왕 비문의 해석 차이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최근에는 일본교과서 역사왜곡 문제로 한·일 관계가 미묘해지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 출간된 재일교포 역사학자 이성시 교수(49, 와세다대학교)의 저서 《만들어진 고대》(박경희 옮김, 삼인)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근대사가 ‘타자를 인식해 만들어진 역사’라는 점에 주목해 눈길을 끈다. 이성시 교수는 전통이 권력과 지배관계 등 정치적 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역사학자 홉스봄의 시점에 동의하면서, 동아시아 각국의 근대사의 현장이 고대사 속에 투영돼 만들어진 역사를 해체하고 고대 동아시아 역사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광개토왕 비문과 발해사를 둘러싼 논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사의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된 단적인 예는 광개토왕 비문의 해석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개토왕 비문은 고구려의 건국신화에서 시작해 동아시아의 유동적인 국제 관계, 고구려의 이민족 지배, 수묘인 체제, 고유법 등 여러 가지 문화적 모습을 응축시킨 고구려 문화의 결정체지만, 1천7백75자에 달하는 비문 전체가 해석되기보다는 유독 32자만이 문제가 됐다. 1889년 일본에서 출간된 《회여록》을 바탕으로 한 광개토왕 비문의 해석 중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잔·신라는 본디 속민이었으므로 원래 조공을 하였다. 그런데 왜는 신묘년에 와서 바다를 건너 백잔·□□(임나)·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일본 사학자들은 이 해석에 따라 적어도 4세기 말부터 야마토 정부가 한반도 남부를 예속시켰음을 주장해왔다. 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비문에 쓰인 왜와 고구려의 전투를 당시 교전 중이었던 일본과 러시아의 각축전에 비겨 근대 일본이 최초로 벌인 대외전쟁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반면 정인보를 시초로 일본측의 해석을 정면으로 부정했던 한국사학자들은 비문에서 왜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고구려 우위의 정세로 해석하려 부심했다. 사학자 김석형은 광개토왕 비문의 해당 구절을 ‘왜’, 즉 일본에 대한 한민족의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한 텍스트로 해석했으며, 이진희는 심지어 일제에 의한 비문 개찬설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성시 교수는 한·일간의 견해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지 않고, 광개토왕 비문의 의미는 비문이 제작된 당시 그것을 읽었을 ‘독자 공동체’의 시점으로 해석해야 하며, 비문의 ‘왜’에 대한 의미 역시 비문을 읽는 대상이 누구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당시 ‘왜’는 고구려를 위태롭게 하는 난적이었지만, 이는 광개토왕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는 트릭스터(trickster)와 같은 존재였다. ‘왜’의 파괴적 활동이 강하게 묘사될수록, 상대적으로 광개토왕의 위업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도외시한 채 ‘왜’가 일본 근대사학자들에 의해 ‘일본’과 동일시되면서 고대 고구려의 텍스트가 근대 일본의 텍스트로 전환돼 제작 당시와 다른 의미가 창출됐고, 이에 반박하는 한국 사학자들의 논지도 민족의식이라는 대의를 세우는데 급급했다는 것이 이성시 교수의 시각이다.
고대의 텍스트를 현대의 컨텍스트에 끌어와 현재를 읽는 것은 금물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 역사를 재인식하는 문제는 단지 한국과 일본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예컨대 남한, 북한, 중국 등 주변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 발해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1962년 간행된 《조선통사》에서 발해를 조선사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즉 북측에서 발흥된 국가가 정통 계보임을 주장해왔다. 또 한국(남한)에서는 ‘통일신라시대’로 불리던 이 시기를 신라와 발해가 한반도 남북에 병존하는 것으로 인식해 ‘남북국 시대’로 고쳐 부르면서 삼국통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뒤집는다. 즉 현재의 남북분단 상황을 신라·발해 병립 시대에 투영해 ‘고대로부터 단일민족이었던’ 남북한의 통합을 지향한다. 한편 중국은 발해가 당나라 때의 소수 민족인 말갈인의 지방 정권이라는 견해를 갖고 중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한족을 중심으로 소수민족을 끌어들인 다민족 국가’라는 자신들의 위상을 공고히 한다.
또한 이성시 교수는 자칫 예민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을 짚어나가면서 한·중·일, 그리고 베트남이 한자문화, 유교문화, 불교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는 중화민국으로 대표되는 중국 중심의 해석이나, 대동아공영권으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주의적 해석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지도를 재구축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성시 교수가 《만들어진 고대》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은 텍스트를 통해 고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록된 내용을 현재의 컨텍스트에 끌어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를 고찰할 때, 그 문화를 직접 향유하는 대상이 아닌 관찰자의 문화적 컨텍스트로 해석하는 것을 금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의 논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광개토왕 비문과 발해사를 둘러싼 논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사의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된 단적인 예는 광개토왕 비문의 해석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개토왕 비문은 고구려의 건국신화에서 시작해 동아시아의 유동적인 국제 관계, 고구려의 이민족 지배, 수묘인 체제, 고유법 등 여러 가지 문화적 모습을 응축시킨 고구려 문화의 결정체지만, 1천7백75자에 달하는 비문 전체가 해석되기보다는 유독 32자만이 문제가 됐다. 1889년 일본에서 출간된 《회여록》을 바탕으로 한 광개토왕 비문의 해석 중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잔·신라는 본디 속민이었으므로 원래 조공을 하였다. 그런데 왜는 신묘년에 와서 바다를 건너 백잔·□□(임나)·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일본 사학자들은 이 해석에 따라 적어도 4세기 말부터 야마토 정부가 한반도 남부를 예속시켰음을 주장해왔다. 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비문에 쓰인 왜와 고구려의 전투를 당시 교전 중이었던 일본과 러시아의 각축전에 비겨 근대 일본이 최초로 벌인 대외전쟁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반면 정인보를 시초로 일본측의 해석을 정면으로 부정했던 한국사학자들은 비문에서 왜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고구려 우위의 정세로 해석하려 부심했다. 사학자 김석형은 광개토왕 비문의 해당 구절을 ‘왜’, 즉 일본에 대한 한민족의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한 텍스트로 해석했으며, 이진희는 심지어 일제에 의한 비문 개찬설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성시 교수는 한·일간의 견해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지 않고, 광개토왕 비문의 의미는 비문이 제작된 당시 그것을 읽었을 ‘독자 공동체’의 시점으로 해석해야 하며, 비문의 ‘왜’에 대한 의미 역시 비문을 읽는 대상이 누구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당시 ‘왜’는 고구려를 위태롭게 하는 난적이었지만, 이는 광개토왕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는 트릭스터(trickster)와 같은 존재였다. ‘왜’의 파괴적 활동이 강하게 묘사될수록, 상대적으로 광개토왕의 위업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도외시한 채 ‘왜’가 일본 근대사학자들에 의해 ‘일본’과 동일시되면서 고대 고구려의 텍스트가 근대 일본의 텍스트로 전환돼 제작 당시와 다른 의미가 창출됐고, 이에 반박하는 한국 사학자들의 논지도 민족의식이라는 대의를 세우는데 급급했다는 것이 이성시 교수의 시각이다.
고대의 텍스트를 현대의 컨텍스트에 끌어와 현재를 읽는 것은 금물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 역사를 재인식하는 문제는 단지 한국과 일본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예컨대 남한, 북한, 중국 등 주변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 발해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1962년 간행된 《조선통사》에서 발해를 조선사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즉 북측에서 발흥된 국가가 정통 계보임을 주장해왔다. 또 한국(남한)에서는 ‘통일신라시대’로 불리던 이 시기를 신라와 발해가 한반도 남북에 병존하는 것으로 인식해 ‘남북국 시대’로 고쳐 부르면서 삼국통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뒤집는다. 즉 현재의 남북분단 상황을 신라·발해 병립 시대에 투영해 ‘고대로부터 단일민족이었던’ 남북한의 통합을 지향한다. 한편 중국은 발해가 당나라 때의 소수 민족인 말갈인의 지방 정권이라는 견해를 갖고 중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한족을 중심으로 소수민족을 끌어들인 다민족 국가’라는 자신들의 위상을 공고히 한다.
또한 이성시 교수는 자칫 예민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을 짚어나가면서 한·중·일, 그리고 베트남이 한자문화, 유교문화, 불교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는 중화민국으로 대표되는 중국 중심의 해석이나, 대동아공영권으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주의적 해석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지도를 재구축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성시 교수가 《만들어진 고대》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은 텍스트를 통해 고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록된 내용을 현재의 컨텍스트에 끌어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를 고찰할 때, 그 문화를 직접 향유하는 대상이 아닌 관찰자의 문화적 컨텍스트로 해석하는 것을 금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의 논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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