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발목을 가장 먼저 잡는 건 “뭘 해서 먹고 살 건데?” 하는 주변 사람들의 끈질긴 질문이다. 결국 ‘밥만 축내는 고등룸펜’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창작을 위해 쓸 정열을 밥벌이에도 분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작가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서 꿈을 접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작가로 살겠다고 결심한 이상은, 이른바 ‘대박’이 터질 때까지 닥치는 대로 잡문을 쓰거나, 혹은 아예 속세를 떠나 탈속의 길을 걷는 수밖에 없다. 아래 두 권의 책은 작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 방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인 <빵 굽는 타자기>(열린책들)는 ‘Hand to Mouth’라는 원제가 보여주듯,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던 무명작가 시절을 회상한 책이다. 요즘이야 시인이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등 다방면에서 유명세를 누리고 있고, 심지어 영화감독 자리까지 꿰찼지만, 폴 오스터에게도 지난한 무명 시절이 있었다.
작가가 되겠다며 대학을 때려치우고 경험한 일감도 참으로 파란만장하지만, 고난을 웃음으로 치환하는 작가의 탁월한 유머감각은 책 읽는 즐거움을 한층 북돋운다. 유조선 선원, 싸구려 탐정소설 작가, 마구잡이 번역자, 실패한 대필 작가, 카드게임 개발자…. 이런 경험을 모티브 삼아 소설에 녹여낸 까닭에, 폴 오스터의 애독자라면 <빵 굽는 타자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이후 발표된 소설과의 연계점을 찾아가며 퍼즐 맞추듯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 말미에는 그가 쓴 세 편의 희곡과 더불어, 직접 고안한 야구 카드게임 ‘액션 베이스볼’의 게임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작가되기의 어려움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처절하게’ 소설가가 된 한국 작가를 꼽으라면 ‘기인’ 이외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1985년 첫 출간됐다 최근 깔끔한 하드커버로 다시 나온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해냄)에 그 파란만장한 분투기가 생생히 실려 있다.
이외수는 안정적인 교사직이 보장되는 춘천교대를 때려치우고 거리에서 하루에 딱 20원씩 구걸하며 극한까지 스스로를 내몰았다. 요즘 화폐 가치로 100원 정도인 20원으로 살 수 있는 건 번데기 한 줌, 또는 삶은 감자 한 톨. 이 두 가지 먹거리를 번갈아가며 이틀에 한 끼씩 먹었고, 잠자리도 마땅치 않아 2년 간 노숙생활을 했다. 인간은 밥벌이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을 몸소 시험해보고자 했던 것일까.
‘전락’한 그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의 경악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려면 그냥 죽어라” 내지는 “아직도 안 죽었수?”가 길에서 그를 만난 사람들의 첫 인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라면 반 개를 먹고 냉수에 라면 스프를 타 마시면서 한 달을 버티고, 땡전 한 푼 없어도 사모하는 여인에게 밥을 사겠다고 큰소리 탕탕 쳤던 배짱은 실로 놀랍다(실제로 밥도 샀다. 물론 외상으로).
하지만 그런 근성과 배짱이 소설가 이외수를 만든 게 아니었을까. 마치 도인처럼 속세를 초월한 듯한 그의 모습은, 필시 저 밑바닥 삶까지 내려가 보았던 시절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소설을 쓴다고 호기를 부리며 춘천 전원다실 구석진 자리에 틀어박혀 글을 휘갈기던 무렵, 평생의 동반자도 얻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대단한 근성이다.
기행으로 점철된 힘겨운 시절의 이야기 중에서도 아내와의 로맨스만큼은 따뜻하다. 특히 아이를 낳은 아내에게 먹일 소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점에 갔다가, 맘씨 나쁜 주인에게 속아서 산 양지머리(실은 비곗덩어리)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마음이 짠하다. 퉁명스럽되 솔직하게 툭툭 내뱉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처한 어려움 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작가 지망생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삶의 자극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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