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아이들이 공을 차고, 김훈이 글로 적다.” 사진집 <공차는 아이들>의 뒤표지에 기록된 한 줄의 문장은, 이 책의 기획 의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가 안웅철의 웅숭깊은 시선과 정제된 김훈의 글이 어우러진 책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뿌듯하게 와 닿는 양장 표지의 단단한 만듦새만큼 듬직하고 힘이 있다. 표지와 속지까지 더해도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책을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은, 맛은 더없이 훌륭하지만 양은 감질나게 적은 케이크를 먹을 때처럼 조마조마하다. 김훈의 글은 케이크 시트와 시트 사이에 얄팍하게 발린 크림처럼, 사진 사이로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글이 짧다고 해서 사유의 깊이도 덩달아 얄팍해지는 것은 아님을, 김훈은 보여준다. “둥근 것은 거기에 가해지는 힘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땅에 부딪치고 비벼지는 저항을 순결하게 드러내서 빼앗기고 뺏는 동작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시킨다. 멀리 하프라인을 건너서 다가오는 공은 지나간 시간과 공간의 모든 궤적과 충격, 흐름과 끊김, 전진과 후퇴의 모든 자취들을 그 안에 지니면서 늘 현재의 공이고, 닥쳐올 모든 시간의 가능성이 그 현재의 시간 속에 열려 있다. 그래서 공은 굴러가고 인간은 쫓아간다. 공이 굴러갈 때, 굴러가는 공을 작동시키는 힘은 쫓아가는 나의 힘이 아니고 그 공을 차낸 너의 힘이다. 너의 힘이 공 속에서 살아서 땅 위를 굴러가고 내가 그 공을 쫓아서 달릴 때 너의 힘과 나의 힘은 땅 위에서 대등하다. 공은 여전히 만인의 것이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
둥근 공 속에 담긴 인생의 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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