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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이 바라본 ‘공차는 사람들’

by 야옹서가 2006. 8. 26.
“하늘 아래, 아이들이 공을 차고, 김훈이 글로 적다.”

사진집 <공차는 아이들>의 뒤표지에 기록된 한 줄의 문장은, 이 책의 기획 의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가 안웅철의 웅숭깊은 시선과 정제된 김훈의 글이 어우러진 책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뿌듯하게 와 닿는 양장 표지의 단단한 만듦새만큼 듬직하고 힘이 있다.

표지와 속지까지 더해도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책을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은, 맛은 더없이 훌륭하지만 양은 감질나게 적은 케이크를 먹을 때처럼 조마조마하다. 김훈의 글은 케이크 시트와 시트 사이에 얄팍하게 발린 크림처럼, 사진 사이로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글이 짧다고 해서 사유의 깊이도 덩달아 얄팍해지는 것은 아님을, 김훈은 보여준다.

“둥근 것은 거기에 가해지는 힘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땅에 부딪치고 비벼지는 저항을 순결하게 드러내서 빼앗기고 뺏는 동작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시킨다. 멀리 하프라인을 건너서 다가오는 공은 지나간 시간과 공간의 모든 궤적과 충격, 흐름과 끊김, 전진과 후퇴의 모든 자취들을 그 안에 지니면서 늘 현재의 공이고, 닥쳐올 모든 시간의 가능성이 그 현재의 시간 속에 열려 있다. 그래서 공은 굴러가고 인간은 쫓아간다. 공이 굴러갈 때, 굴러가는 공을 작동시키는 힘은 쫓아가는 나의 힘이 아니고 그 공을 차낸 너의 힘이다. 너의 힘이 공 속에서 살아서 땅 위를 굴러가고 내가 그 공을 쫓아서 달릴 때 너의 힘과 나의 힘은 땅 위에서 대등하다. 공은 여전히 만인의 것이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둥근 공 속에 담긴 인생의 비의
공은 둥글고 작은 세계다. 둥글기 때문에 어디로든 튀어나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한가운데가 텅 빈 가죽 조각의 총합을 넘어, 공이 인생에 대한 비의를 담게 되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면서부터다.

제목이 <공차는 아이들>인 만큼,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피사체는 역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공간은 다양하다. 마당 대신 좁고 긴 동선을 공유하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흙먼지가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굽이굽이 휘어드는 골목마다 사연을 간직한 골목길에서 아이들은 공을 찬다.

어떤 소녀는 공을 차기보다 보물처럼 소중히 어루만지고, 어떤 소년은 적막한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공을 친구 삼아 굴리며 함께 달린다. 그러나 굳이 책 제목에 드러나는 연령대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을 두루 아우름으로써,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공이라면 자연스럽게 축구가 연상되는 월드컵이 벌써 먼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 <공차는 아이들>은 언뜻 보기에 ‘뜰’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 책은 월드컵과 무관하게 발간하길 잘했다. 축구 열풍에 편승한 책으로만 평가받기에는 아쉽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길, 길 위의 사람들, 그들의 발끝에 차여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의 움직임을 따라, 마음의 여백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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