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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역사, 죽은 자의 남겨진 이야기

by 야옹서가 2006. 8. 19.
보건복지부에서 2006년 발표한 어느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20, 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가장 혈기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이 무렵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날로 심해져가는 경쟁 사회에서 박탈감이나 우울감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어서 힘들겠다”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대사가 공감대를 얻는 건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마르탱 모네스티에가 무려 20여 년간의 자료 조사와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한 <자살>(새움)은, 이처럼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마지막 탈출구로 선택한 자살의 역사와 방법, 실제 사례들을 조망한 책이다. 자살의 방법, 자살하는 이유, 자살하는 사람들의 특성, 자살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 자살에 얽힌 불가사의한 사건들, 자살로 위장된 타살, 문학 속의 자살, 심지어 동물들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폈으니, 그야말로 ‘자살의 백과사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양도 방대해 번역된 분량만 600여 쪽에 달한다.
책에 소개된 자살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목매달기, 손목 긋기, 투신하기 등과 같이 흔히 시도하는 방법 외에도, 세 마리의 사자가 들어있는 우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루이 엘메다 공작, 삽을 이용한 단두대를 만든 제분업자, 피아노를 단두대처럼 목등뼈에 떨어지게끔 설계한 자살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자의에 의한 자살뿐 아니라 타의에 의한 명예 자살도 언급한다. 독당근을 탄 사약을 마시게 한 그리스, 아주 얇게 편 금박을 자살자에게 삼키도록 한 중국, 할복자가 배를 가르고 개착인이 목을 치게 한 일본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한편 통제할 수 없는 공포가 자살을 촉발하는 경우도 있다. 1938년 10월 한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오손 웰즈의 방송 사고가 그 예다. 그가 H.G.웰즈의 ‘스타워즈’를 각색한 내용을 너무나 실감나게 이야기한 바람에,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고, 공포에 질린 시민 일부는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 통계와 다양한 사례로 나열되는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살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이제 그만 생을 마치려 합니다>(해토)는 ‘유서로 본 자살의 심리탐구서’라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도입부는 흔히 볼 수 있는 자살에 관한 일반론을 소개했지만, 정작 마음을 흔드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다양한 유서들이다. 우리 주변에 한두 명은 있음직한 평범한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얼마나 많은 마음의 갈등이 저 글귀 속에 들어있는 것일까.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하지만 이제 당신을 포함하여 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겠어. 나 때문에 근심할 일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말이야.”

“삶은 고통과 불행일 뿐, 정말 괴로웠어요. 다시 한 번 환멸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어요.”

자살자들은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내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여러 번의 예비 신호를 보낸다. 자살은 그 중 마지막 신호다. 누군가는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을 차분하게 정리하며 맞이하고, 누군가는 죽기 싫지만 억지로 죽음에 끌려가는 듯 원망하고 저주한다. 자살자들을 의지박약한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그들의 손을 한번쯤 잡아줄 수는 없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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