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13. 2001 | 9월 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스위스 작가 실비 플러리의 개인전 ‘O ’를 개최한다. 랑콤의 향수 로고를 전시 제목으로 삼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실비 플러리는 유명 브랜드 제품, 상품 광고, 패션쇼, 의상 디자인 등을 순수예술과 결합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패션 잡지에 실린 유명 브랜드의 광고 문구와 전시 타이틀을 이용한 네온사인 작업, 월페인팅, 설치작업 및 영상작업이 소개된다. 실비 플러리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초청작가로 국내에 선보인바 있지만, 그녀의 개인전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산 물건이 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198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예술무대에서 활동해온 실비 플러리는 1990년대 초 쇼핑한 물건과 쇼핑백을 이용한 일련의 ‘쇼핑백’작업으로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쇼핑한 물건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경제적 능력, 미적 취향, 사회적 계급 등 구매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기호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시사적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3층에 전시된 설치작품 ‘Chrome Gang with Fur’(1998)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켈리 핸드백, 구찌 하이힐, 샘소나이트 가방, 에비앙 생수, 나이키 운동화 등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실물 크기의 브론즈로 복제해 흰색 인조모피를 깐 좌대 위에 전시했다. 크롬으로 도금해 매력적인 장신구처럼 빛나는 오브제들은 이들 ‘명품’이 현대사회에서 다른 어떤 예술작품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작품’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비 플러리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피엣 몬드리안, 클래스 올덴버그, 칼 안드레, 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한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을 풍자적으로 차용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2층 전시장은 랑콤 향수 ‘O oui’의 로고를 벽면에 빼곡이 그린 월포스터 ‘O ’(2001) 위에 화장품 광고 문구를 담은 네온사인이 띠처럼 둘러져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 ‘A Bigger Splash’(2001)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호크니의 그림에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기듯, 여성적 매력을 부추기는 광고 문구가 범람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바닥에 깔린 칼 안드레의 미니멀리즘 조각 위에서 모델들이 패션쇼를 하는 영상작업 ‘Walking on Carl Andre’(1997)는 바닥재인지 예술작품인지 모를 현대미술에 대한 조소가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남성 위주 문화를 재치있게 전복한 작업 돋보여
그녀의 작품은 미술사 속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미술가의 신화를 전복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소리 높여 강조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면면에서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일례로 ‘Zen & Speed(2001)’는 휴고 보스사가 디자인을 의뢰한 옷으로 패션쇼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상의와 바지가 아닌 드레스 형태의 레이싱복이 등장한다. 옵아트적인 배경 앞에 서서 술을 마시며 매력적인 포즈를 취하는 여성 모델들은 남자만의 전유물로 인식돼온 카레이스의 세계를 풍자한다.
이밖에도 1층 로비에 설치된 PDP에서는 맥(MAC)사의 색조화장품을 엑스퍼트 자동차로 짓밟고 지나가는 퍼포먼스 ‘Expert Make-up’을 5분 길이로 편집해 상영한다. 입장료는 일반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전화 02-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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