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나라 요시토모 강연회 내용정리

by 야옹서가 2005. 6. 25.
지난 18일 열렸던 나라 요시토모의 강연회 내용을, 녹취까지는 아니고 대충 받아적었습니다. 강연회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작가도 놀랐다고 하는데, 약간의 질의응답과 사인회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슬라이드를 보면서 틈틈이 받아적은 거라 작가의 표현과 100%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나, 당시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적습니다. 강의 앞부분의 10분 정도는 적지 못해서 내용이 없습니다. 사진도 투사된 화면을 찍은 거라 화질이나 색감은 별로 안 좋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옆에서 비스듬히 찍은 사진이 많은데 사진보정을 일일이 하기엔 너무 번거로워서-_- 어쨌든 스스로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또 강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께도 들려드리고 싶어서 강연회 내용을 정리합니다. 혹시 제가 정리한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 글을 퍼 가실 경우 출처 정도는 밝혀주는 센스~ 그럼 즐감하세요!
==========================================================================================================

#
2005년 4월
전시장에서 '서울하우스'를 보셨을텐데, 4월경 '서울하우스'를 만들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재료를 구했던 당시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재료는 안 찍고 열심히 개 사진만 찍었군요.


#
2005년 3월
제가 그림 그리는 방식을 보여드릴게요. 저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처음부터 화면에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냥 그리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헤어스타일도 바꿔보고, 날씬하다 싶으면 약간 통통하게도 만들어보고 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줘 가며 그립니다. 여백이 많아 보여서 손 위에 나무도 그려보고요.


이 캔버스는 원형으로 지름이 180cm 정도 됩니다. 이렇게 타원형으로 만들어보면 비례가 좀 더 맞을 것 같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캔버스라 자르기가 힘들어서(웃음) 그냥 옆으로 뻗은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자, 이것이 완성된 상태입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장난치면서 하는 것이 훨씬 공부가 됩니다. 저는 완성된 작품보다는 작업과정의 도중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
2005년 2월
개 조형물을 작업할 때의 모습입니다. 발포 스티로폼을 너무 많이 깎아버린 상태라면, 점토(사진에서 진회색으로 덧붙인 부분)로 살을 덧붙여 놓습니다. 이 조형물의 크기는 1m 정도입니다만, 10분의 1 크기이기 때문에 실제로 완성된 작품은 10m 정도가 될 것입니다.


#
2005년 1월 1일
새해를 맞은 작업실입니다만 꽤 지저분합니다. 새해를 이렇게 지저분한 작업실에서 시작한다는 게 왠지 그래서, 틈틈이 작업실을 치워보았습니다. 이게 1월 2일, 이게 1월 3일의 모습입니다.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저는 치웠다는 게 왠지 뿌듯해서 쓸데없는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저는 요즘 동경에 살고 있는데, 파, 유채꽃 같은 것들이 주변에 있어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평소에 이런저런 사진들을 많이 찍습니다.

#
1984-85년 사이에 그린 그림입니다. 반창고라던지, 물웅덩이라던지, 그림에 문장이 들어간다던지 하는 구성은 비슷합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집이 똑같이 등장하기도 하죠. (최근의 작업은 초창기의 제 그림보다) 단순히 표현방식이 세련되어갈 뿐 그림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그리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학생 때 그린, 굳어서 못 쓰게 된 붓 위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 붓은 왠지 못 버리겠어서, 갖고 있다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좋아서 집에 가져다 벽에 한동안 걸어 두었습니다.
집에 놓는 그림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그린 그림은 누군가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결국 보여주기 부끄러운 것들이 결국 정말 '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이것은 역시 학생 때 버려진 나무조각으로 만든 집입니다. '서울하우스' 역시 버려진 나무를 주워 만든 것이지요.


#
이것은 학생 시절부터 모은 인형들입니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저는 제가 그린 그림 모두가 저의 자화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그림보다 음악을 좋아해서 뮤지션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두 가지이지만, 기타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 그림은 그런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오는데, 저 빛으로는 한 사람만 오를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거나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설정)

#
이것은 1988년도 그림입니다. 싹이 두 개인 새싹을 옛날부터 그려왔습니다(왼쪽). 그렇게 보면 (아직까지도 동일한 주제를 그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진부한 점이 없지않나 생각합니다만... 그릴 때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손이 불타고 있다거나 하는 그림(오른쪽)을 그리고 있습니다.


#
이것은 기저귀를 한 새의 그림입니다. 새는 아무데서나 똥을 싸니까, 기저귀를 채워 주고 싶었습니다. 인사동에 새가 있는 찻집이 있는데 그 새를 보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1990년 그림입니다. 이때부터 처음으로 제 그림에 나이프가 등장했습니다.


#
이것은 친구의 작업실에 걸어둔 그림들입니다. 이 작업실은 원래 말(馬)이 쓰던 것으로 입구문의 양 편에는 말이 통과할 때 몸이 닿는 양쪽에, 고무로 된 무엇인가가 뱅글 돌아갑니다. 말에게는 친절한 구조입니다만, 지금은 말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친구 중에 눈꺼풀을 까뒤집어서 무서웠던 경험이 누구나 있었겠죠. 그런 기억이 이상하게도 남아있군요.


#
저는 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고요한 풍경을 잡은 것인데, 파라솔의 평화로운 느낌에 비해 그 그림자는 거꾸로 보면 해골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이미지라서 좋아합니다.


#
아프가니스탄에는 '카불 견'이라는 그 지역 고유의 개가 있습니다. 제가 작업하는 강아지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
이것들은 CD 자켓입니다.



(나라 요시토모는 CD자켓, 티셔츠 등의 작업도 많이 했습니다. 값비싼 그림은 미술관에서 보거나 혹은 돈이 많은 소장가들이 사지만, 대신 그의 그림을 살 수 없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손쉽게 저렴한 가격으로 그의 그림을 구입하고 즐길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서입니다.)

#
다른 곳에서 한 전시는 얼굴 모양이 내려다보일 수 있도록 했는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전구를 매달아서 심리적으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도록 했습니다.

#
이것은 동경에 있는 저의 드로잉 룸입니다. 상설전시 중이므로, 동경에 들를 기회가 있으면 한번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원래 네모난 방이었습니다만, 제가 삼각형 지붕을 좋아해서 모양을 바꾸었습니다. 창문 뒤쪽에 형광등을 넣고 나무가 보이는 사진도 넣어 실제로 빛이 비쳐 들어오는 것 같이 해두었지만, 실은 연출된 창문입니다.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창문 근처에는 나뭇잎도 몇 잎 떨어뜨려 두었습니다만 이것은 너무 오버한 것 같죠?


#
저는 서울하우스와 같은 형식의 작업을 여러 도시에서 했었습니다. 이런 형식의 작업 중에서는 서울하우스가 가장 규모가 큰 것 같습니다. 타이페이하우스도 작업했는데 이것 역시 현지에서 목재와 같은 재료들을 구했습니다. 힘들지만 기뻤습니다. 현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다음부터는 질의응답 내용입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와는 무관한, 지극히 사적인 질문을 던진 사람이 두어 명 있어서 짜증스러웠습니다만 그 질문은 그다지 영양가가 없으므로 생략합니다.

#
Q :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우키요에 등 일본 전통미술의 영향도 받은 것 같은데?
A :
우키요에는 대중을 위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우키요에의 내용이란 게 인기 있는 여행지, 관광명소 후지산 같은 것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러 예술분야가 국보로 지정될 때, 대중적 예술인 우키요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 자포니즘이 유행하면서 일본 도자기가 수출되어 배에 실렸는데, 요즘이라면 신문지나 잡지 같은 것으로 싸서 보냈겠지만 당시에는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우키요에로 싸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프랑스 화가들은 자포니즘 영향을 받은 도자기보다 우키요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자기는 설명해주는 사람이 많았지만, 우키요에는 설명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도. 나의 작업은 그런 대중적 예술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음악에 대한 질문인데 여기에 대한 답변은 없었음 OTL)

#
Q : 입체 작품의 재료는 무엇이고 제작 기술은 어떻게 습득했는지?
A :
입체작품을 만들 때에는 주로 FRP를 사용합니다. 제작 기술은 열아홉 살 때 동경 디즈니랜드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익혔습니다. 남들이 4년 동안 학교에서 배울 것들을 나는 3개월 만에 익힌 셈입니다.

#
Q : 좋아하는 만화 작가가 있다면...
A :
말해도(대중적인 작가가 아니라서) 여러분은 잘 모를 것 같습니다만 마츠모토 타이요('철근콘크리트'의 작가)를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이 다 알만한 작가를 이야기하면...솔직히 세일러문 같은 만화는 별로 안 좋아했었습니다. 눈이 별처럼 반짝인다거나....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런 눈도 매력이 있는 것 같더군요.

#
Q : 한국에서 꽤 인기가 많은데 혹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요시모토 바나나 씨와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가 있는지?
A :
몰랐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씨와의 공통점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계속 반복, 반복한다는 것이죠. 하나의 세계관을 부정해도 결국 우러나고 마는, 자기 반영입니다.

#
Q : 그림 속에 등장하는 얼굴이 전형적인데... 특정한 모델이 있는지?
A :
모델은 없어요. 그런 얼굴의 여자가 실제로 있으면 좀 무서울 겁니다.(웃음) 그런데 가끔 거리를 지나다 보면 신기할 만큼 많이 닮은 사람도 가끔 봅니다. 그래서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아마 그 여자아이가 무서워했을지도 몰라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의식하지 않고 그리는 사이에 그렇게 그려지고 말아요. 오히려 사진처럼 그리는 것을 의식하고 그리면 여러분이 굉장하다 할만큼 잘 그린 그림도 그릴 수 있지만... 결국은 무의식적으로 그린 얼굴이 우러나오는 겁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나오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런 진실에 이유는 없습니다.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때 그 사람에게 어떤 점에 감동받았냐고 물어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눈물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렇듯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는 모델이 없다고 했는데, "아, 닮았네!" 하는 사람들은 가끔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있으면 계속 쳐다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서워하면서 나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제 그림을 보시더니 "네가 어렸을 때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어" 하고 말씀해주셨어요.

#
Q : 본인 스스로 그림을 설명할 때 어떤 식으로 설명하나요?
A :
내 그림의 첫 관객은 나이고, 그림을 그릴 때도 그림과의 대화 속에서 그려나갑니다. 완성된 그림 속 사람을 지그시 마주보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이에 말은 필요 없지…."
말로 설명할수록, 진실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방정식 같은 게 아니므로. 정말 감정적으로 되어있는 것이기 때문에요.

제 그림은 제 감정이 모티브가 된다고 했는데, 똑같은 그림일지라도 보는 사람의 감정이 반영됩니다. 예를 들어서 웃고 있는 얼굴 그림을 보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그림을 보고 "뭘 보고 웃냐?"라며 시비거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또다른 사람은 "나도 웃어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설명하면 할수록 이상해지는군요.

#
Q : 이제 막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학생이나 아마추어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A :
제가 지금 45살인데, 36살 때까지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전 학생입니다' 하고 다녔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화가로 불린 것입니다.
하고싶은 것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완성된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알아주지 않나" 하고 안달하면 스트레스만 받을 뿐입니다. 나 자신이 주위에서 날 어떻게 보고 있나 생각하지 말고, 하고싶은 것을 하면 됩니다.

나는 꽤 부자가 됐지만 15년 전 독일 체류 2년째 되던 해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1년에 400만원만으로 생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활했지만 고통스럽기보다는 즐거웠습니다.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부자가 되거나 전시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제 책이 나왔고 전시도 하지만, 예전에 아무도 저를 몰라줄 때에도 그림 할 때가 즐거웠습니다.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목적을 확실히 가지면 걱정 근심이 사라질 겁니다. 만약 부자가 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겁니다. 그런데 이건 쉽지 않겠죠?

아무 것도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책을 내거나 전시를 하거나, 잘 나갔으면 그런 사람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10대, 20대에는 정말 이상적으로, 살고 싶은 목표대로 사는 게 좋습니다. 이런 생각은 어떤 직업에도 적용됩니다.

하지만 저도 망설일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조언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제게 조언해주는 건, 제가 10년 전에 그린 그림입니다. 10년 전에 그린 그림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또 한 번 말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