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3. 2001 | 고기만 먹는 황제 다이어트, 사과다이어트, 감자다이어트 등 한 가지 음식만 먹는 원푸드 다이어트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하다. 최근에는 지방분해수술, 지방흡수 억제제 제니칼, 비만주사, 심지어는 위 절제술까지 등장해 단번에 살을 빼주겠다고 나서니, “살아, 살아, 내 살들아!”를 외치며 괴로워해 본 사람들이라면 솔깃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강한의원 원장 이유명호씨는 이처럼 억지로 살을 빼는 행위를 ‘몸을 망치는 황당 엽기 살빼기’라고 비난한다. 그가 올 1월부터 준비해 《살에게 말을 걸어봐》(이프)란 책을 펴낸 것도, 시중에 난무하는 살빼기 비법 대신 몸을 살리는 살풀이 자습서가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머리를 다치면 벌벌 떨면서, 몸은 하찮게 생각해 자기 몸에 대해 알려고도 하질 않아요. 내 몸은 고통의 신호를 보내는데, 남의 시선만 의식하고 어떻게든 요령을 부려서 살을 빼려고 하죠. 이런 다이어트 시장에서 가장 착취당하는 게 비만여성이예요. 우선 취직이 안되고, 돈도 없는데 병은 많아요. 이들에게 미용은 둘째 문제죠. 또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남자, 여자를 떠나서 몸을 존중하고 그 소중함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냈습니다.”
다이어트 대신 몸 안에 맺힌 살을 푸는 살풀이
그래서 《살에게 말을 걸어봐》에는 살빼기라는 단어 대신 ‘살풀이 속풀이’가 등장한다. 건강한 몸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이를 가꾸기 위해 목표를 세워 실천하는 과정은 몸과 마음이 어울려 신명을 일으키는 놀이판이라는 것이다. 이유명호씨는 먼저 심리테스트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원수로 여겼던 살과 화해하며 입으로 살풀이를 하도록 준비운동을 시킨다. 사주풀이로 체질을 분석한 뒤 오링테스트로 몸에 맞는 음식을 추리는 건 기본이다.
살빼기 운동에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손목과 발목에 차고 운동할 1킬로그램 짜리 모래주머니 한 쌍, 숫자표시가 되는 수셈 줄넘기 정도만 준비해도 충분하다. 여기에다 잘 쓰지 않는 근육들의 잠을 깨우는 학호흡과 경락 마사지로 몸의 기운을 순환시켜주다 보면 내 몸, 내 살이 어느덧 살갑게 느껴진다. 이유명호씨는 단순히 살을 빼는 데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몸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을 지향한다. 이는 그가 이끄는 ‘우아사’ 모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우아사’는 ‘우리는 이미 아름다운 사람들’의 약칭이에요. 남녀노소, 몸무게, 키, 나이, 국적, 성적 취향 제한 없이 몸의 해방과 건강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모임이죠. 젊은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모르니까 제가 한 달에 한번 이벤트를 해요. 어떤 날은 현대백화점 압구정동에서 만나서 동호대교 밑으로 해서 여의도까지 걸어와서 감자탕 먹고, 신촌에서 만나 서강대교로 걸어서 여의도공원까지 걷고, 북한산도 가고 그래요. 그러면서 그동안 억압했던 이야기를 속 시원히 털어놓는 거죠.”
비만으로 한의원을 찾아오는 여성들뿐 아니라 아들 낳는 처방을 부탁하는 여성들을 만나면서 이유명호씨는 여성의 몸이 얼마나 부당하게 대우받는지 지켜봤다. 여성학강사로도 활동중인 그는 강의를 나갈 때 자연스럽게 ‘여자 몸 정말 잘났다’를 주제로 삼는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여성이 근육 대신 지방과 자궁을 지니게 됐는데, 그 때문에 차별을 받는 건 부당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몸의 해방을 꿈꾸며
또 남자와 여자 몸을 반씩 합쳐 한 생명을 만들어내는데도, 아이가 남자 쪽의 혈통을 잇는다 생각하는 것 역시 모순이라 믿는다. 이유명호씨가 부모성 함께 쓰기나 호주제 폐지운동에 동참하는 것도 양성이 평등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자는 논지에서다. 남강한의원 홈페이지 ‘약초밭’에 들어가면 이유명호씨가 그동안 여러 매체에 연재한 칼럼과 우아사 게시판에서 펼쳐지는 시원스런 입담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나중에 봉고차 하나 사서 타고 돌아다니면서 맥도 봐 주고 침도 놔주는 유랑 한의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유명호씨의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거창한 이론이나 운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몸의 해방을 실천하려는 희망이 담겨있다. 또한 《살에게 말을 걸어봐》를 판매한 수익금은 여성장애인을 위한 쉼터 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어서 더욱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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