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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15년간 《삼국유사》사진 찍은 ‘알바작가’ 양진

by 야옹서가 2006. 3. 17.
[미디어다음/2006. 3. 17]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 탄신800주년을 맞아 관련 도서들이 잇달아 발간되는 가운데, 15년 간 《삼국유사》 속 유적지를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온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나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알바작가’일 뿐”이라고 눙치는 양진 씨의 사진 편력기, 한번 들어보자. 


경주 남산 신선대 마애불. 신선대의 일출이 어떨까 상상하며 어두운 밤 랜턴도 없이 칠불암으로 가는 산길을 올랐다. 달 구경을 하다가 숨죽이며 맞이한 일출.

‘삼국유사 특별전’(~3. 24)이 열리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양진 씨를 만났다. 그의 공식적인 직업은 웹 컨설턴트다. 관람객 수 1,200만 명을 넘어선 영화 <왕의 남자>의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해 <질투는 나의 힘>, <영어완전정복>, <우리 형>, <아는 여자>, <연애의 목적> 등 유쾌발랄한 홈페이지가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오늘은 그의 ‘비공식적’ 직업에 대해 물을 참이다.


《삼국유사》라는 한 가지 주제로 15년 넘게 사진을 찍어왔지만, 양진 씨는 굳이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금속공학을 전공했다니 현재 직업이나 전공만 본다면 그런 호칭이 낯설기는 하다. “그럼 사진애호가라고 불러야 되나요?” 하고 물으니, 잠깐 생각하다가 “남들에겐 ‘알바작가’라고 그래요” 하고 씩 웃으며 답한다. 전업작가의 반대말, 오늘 새로 배웠다.


경주 대릉원에 있는 황남대총. 밤새 폭설이 내린 새벽,  먼저 황남대총에 올라간 사람이 있어 멋진 사진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풍경을 만나는 날은 행복하다.

 


경주 대릉원. 눈과 능과 하늘과 햇살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양진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부에서 활동했다. 연세대에 입학해서도 사진동아리 ‘연영회’에 가입해 민속·전통 문화 관련 사진을 찍어 왔다. 《삼국유사》 에 등장하는 유적지를 찾아 전국을 누비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91년부터 학교 선배인 고운기 씨와 함께 《삼국유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사진을 찍은 결과물이 얼마 전 단행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현암사)로 묶여 나왔다. 고운기 씨의 글에, 양진 씨의 사진 400여 장이 고루 스며들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이 중 60점이 전시 중이다.



 
고창 서해 바닷가. 이제껏 본 일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할 때의 모습이 어땠을까 상상하면서 해안도로를 달리다 찾은 장면이다. 
 
양진 씨의 사진이 한층 생생해 보이는 건 계절감이 잘 녹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밤새 내린 폭설에 덮여 거대한 눈 언덕으로 변신한 경주 대릉원, 팝콘 같은 벽오동 꽃이 우수수 떨어진 울산 망해사 터, 노란 벼이삭 속에 파묻혀 살짝 머리만 내민 경주 보문동 절터, 이슬 먹은 가을 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경주 사천왕사 터….

이런 풍경은 시간과 예산에 쫓겨 가며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급히 찍은 사진에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다.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꾸준히 유적지를 찾는 끈기가 이 사진들을 만들었다. 심지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진표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변산의 불사의암 터를 찍을 때는, 마음에 드는 장면을 얻기 위해 다섯 차례나 험난한 산을 오르기도 했다.


눈 쌓인 경주 대릉원. 황남대총에 오르면 경주 시가지는 물론 멀리 남산, 선도산, 토함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경주 보문동 절터. 연꽃무늬가 새겨진 예쁜 당간지주가 논 가운데 반쯤 묻혀 있다. 추수를 한 다음에야 가까이 갈 수 있다. 

 


변산 불사의암 터. 금산사를 중창한 진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고 한다. 오른쪽 깎아지른 절벽에 두 사람이 누울 만한 좁은 공간이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자주 찍으러 간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양진 씨는 되도록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 사진을 찍는다. 5월부터는 여름이 다 갈 때까지는 신록이 우거져 풍경에 별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때’를 잘 만나는 일이다. 여기에는 운도 따라야 하지만, 과학적인 날씨 분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가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기상청의 일기도이다. 

“이를테면, 겨울에 경주 눈 온 사진을 찍고 싶다고 쳐요. ‘언제 눈이 온다’는 식의 일기예보에만 의지하면 안돼요. 잘 맞지도 않을뿐더러, 눈이 오기 전에 미리 내려가 있어야 하거든요. 일단 저는 기상청에 들어가서 일기도를 열심히 봐요. 최저기온이 몇 도인지 확인도 하고. 눈이 올 수 있는 조건인지 확인하는 거죠.” 


한번은 강릉에서 촬영을 하던 중에, 여느 때처럼 습관적으로 인터넷으로 일기도를 검색하다 눈이 올 것 같은 확신이 섰다. 그길로 한달음에 경주까지 갔다. 눈 덮인 경주 능을 찍을 생각이었다. 한데 한밤중이 되어도 도무지 눈 올 기색이 안 보였다.


“그런데 포항에는 눈이 온대요. 그러면 감포에도 눈이 오겠다 싶어 감은사지를 찍고, 다시 경주로 돌아왔는데도 눈이 안 와요. 그냥 가기도 아깝고 또 하룻밤을 경주에 묵었는데, 그날 밤 9시부터 눈이 오는 거예요. 한겨울도 아니고, 2005년 3월 초였는데 눈이 25cm인가 내렸어요.”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경주의 푸근한 눈 풍경을 이날 모두 얻었다.    

경주 남산 삼릉. 경주 남산 서쪽 아래 포석정 근처에 있는 삼릉. 여기서 출발해 상선암 쪽으로 남산을 오르면 가장 많은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매력적인 피사체가 존재하는데, 양진 씨가 유독 유적지 사진에 매료된 이유가 뭘까? 그는 ‘한결같음’을 가장 큰 미덕으로 꼽았다.

“유적지는 제가 언제 가더라도 늘 그 자리에 있어요. 한결같지요. 물론 사라지거나 변하는 곳도 있지만요. 사람보다 경치를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똑같은 풍경이라도 비오는 날, 안개 낀 날의 느낌이 다르고, 갈 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달라져요. 그런 다채로움도 매력이죠.”


경주 황룡사 옆 폐탑. 황룡사 터에 갈 때면 늘 함께 들르는 곳이다. 몸돌 하나만 남았음에도 볼 때마다 강한 느낌을 받지만, 아직 그 느낌만한 사진은 못 찍었다.


익산 미륵사 터에 복원된 동쪽 석탑. 마침 때가 맞아서 해가 탑에 매달리기를 기다렸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너무 자주 봐서 표현하기가 더 어려운 곳이 바로 이 탑이었는데, 모처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졌다.
  

 


판화가 이철수 씨가 사인 대신 사용하라고 만들어준 압인. 거대한 눈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해서 받은 형상이다.  사진가에게 카메라는 눈과 같으니까.  


양진 씨의 사진 경력은 20년에 육박하지만, 개인전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갤러리라는 닫힌 공간에서 전시하는 게 답답해서다. 이번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박물관에서 하는 거라 수락했다고 한다.

 

갤러리에서의 사진전 대신, 기발한 거리 전시를 연 적은 있다. 사진동아리 후배 40여 명과 함께 신촌을 몇 구역으로 나눠 신촌의 하루를 24시간 동안 찍고, 그 결과물을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1992년 첫 거리 전시를 열었고, 2002년에 두 번째 거리 전시를 개최했다. 10년 뒤인 2012년에도 다시 똑같은 콘셉트로 사진을 찍고 전시할 예정이다. 그가 포착한 신촌의 모습은 10년 단위로 어떻게 변해갈까?


문득 ‘한도시 이야기’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1994년 6월 9일, 하루 동안 서울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온라인상에 전시한  ‘한도시 이야기’ 프로젝트 역시 10년을 주기로 전시된다. 양진 씨의 거리 전시는 이보다 2년이나 앞서 시행된 ‘시간의 아카이브’인 셈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지게 되는 ‘장비병’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해 이점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한데 그는 어지간한 지름신의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장비는 필요한 사진을 찍는 데 적합한 정도면 된다고 생각해요. 라이카가 좋다고 해서 제가 그걸 쓰지는 않거든요. 불편하니까. 실제로 니콘 FM2만 가지고도 1985년부터 2002년까지 잘 썼어요. 그러다 F4로 바꿨죠. 파노라마 사진은 핫셀블러드 X-Pan으로 찍어요. 그렇게 두 대를 들고 다니며 상황에 맞게 찍죠. 요즘은 35mm는 디지털카메라로 찍기도 해요.”


성덕대왕신종 사진 앞에 선 양진 씨. 는 “남들 찍는 것 똑같이 찍지 말고, 마음 가는 주제를 정해 꾸준히 찍어보라”고 조언했다.

단순히 멋진 풍경이나 예쁜 사진은 잠시 경탄을 불러일으킬 뿐이지만, 사진 찍는 이가 애착을 갖고 공명한 피사체는, 사진을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감동하게 만든다. 먼저 평생 주제로 삼을 만한 대상을 정하는 게 중요할 뿐, 기술이나 장비는 그 다음 문제다. 
누구나 ‘밥벌이’와 ‘하고 싶은 일’이 일치되는 삶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삶이 어렵다면, 양진 씨처럼 즐거운 ‘알바 작가’로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그만큼 더 부지런하고 치열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삼국유사의 흔적을 찾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풍경들은 다시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중에 스님 홀로 수행하는 오대산 염불암. 한강의 발원지 우통수 물을 뜨러 다녀간 스님의 발자국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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