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민아파트의 정면을 축소해 전시장으로 가져온 듯 생생한 묘사가 넘치는 정재호의 '대광맨션아파트'.
'대광맨션아파트'의 세부.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차양을 내려 빛을 가린 것이 이채롭다. 가난하되 자신의 공간을 꾸밀 줄 아는 이들의 소소한 개성이 다채로운 차양에서 드러난다.
재개발의 흐름에 밀려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애틋함은 작가의 경험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 1978년, 국민학교 1학년 무렵 처음 종암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던 작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옛 집터를 찾았을 때 많은 것이 변하지 않고 남아있음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유년기가 골목길 하나하나마다 기록되어 있는 곳, 금빛으로 빛나는 63빌딩이 한 층씩 키를 높여 가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자랐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 것이다.
그가 마주친 옛 동네는 마음에 그렸던 소중한 추억의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2004년, 작가는 "철거를 앞둔 아파트에서 이미 떠난 사람들의 흔적과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의 절규를 마주했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나의 과거였고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현재였으며 또 그들의 미래이기도 했다"고 독백한다.
정 작가가 지금까지 자료를 모으고 그림으로 그려낸 아파트만 해도 회현시범아파트, 중산시범아파트, 대광맨션, 대성맨숀아파트, 수색아파트, 옥인시범아파트, 연희시범아파트, 금화시민아파트 등 10여 곳에 달한다. 그의 블로그에 놀러온 친구들이 "책을 써라" 하고 농담을 던질 만큼 취재한 자료의 양도 방대해졌다.
남산순환도로에서 보이는 해방촌 풍경이다. 해방과 함께 북쪽으로부터 월남한 사람들이, 일본인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을 차지하면서 시작된 해방촌의 역사를 담았다. 강북의 오래된 옛 동네를 훑는 정재호의 촘촘한 붓자욱은, '와우산'과 '을지로 순환선'에서 광각렌즈처럼 주변 사물을 세심하게 기록했던 최호철의 시각과 견줄만하다.
이제는 사라진 청운아파트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주로 높은 지대에 위치했던 시민아파트들은 전망 하나만큼은 어느 곳 못지 않게 시원했다.
첫 작업 대상이었던 청운아파트를 그린 <청운동 기념비 Ⅰ>(2004). 그림의 가로 폭이 4.5미터에 달한다.
2005년 12월 열린 네 번째 개인전 '오래된 아파트'전에서는 중산시범아파트가 입체로 재현되어 세월 담은 기념비로서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전했다.
<회현동 기념비>(2005). 정재호 작가는 "아파트 앞마당에서 아파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중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야 한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갔더니 1층이 아니고 5-6층인 독특한 구조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취재한 사진과 이야기들은, 이제 더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서울에 남아있던 시민아파트들이 점차 철거되어 단 한 곳, 회현시범아파트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올해 안으로 재개발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69년부터 71년까지 서울 달동네 곳곳에서는 아파트 신축 공사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당시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주도해 판자촌을 없애고 그 자리에 신식 주거시설인 시민아파트를 짓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평지가 아닌 산 중턱을 타고 이들 시민아파트가 건축된 것은, 원래 이 지역이 달동네 지역이어서 땅값이 싼 탓도 있었지만, 멀리서도 아파트가 잘 보이도록 '전시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9년 서울 달동네 판자촌을 밀어내고 들어선 시민아파트는 한때 420여 개 동에 달했으나, 1970년 4월 와우시민아파트가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지면서 시민아파트 건축 방침이 전면 재검토되었다. 예외적으로 1972년 건축된 몇몇을 제외하면 시민아파트 시대는 1971년을 정점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들 시민아파트는 요즘 아파트와 달리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거대한 축대 위에 올라앉은 아파트, 계단 통로 부분이 마치 변신 로보트처럼 툭 튀어나온 아파트,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구름다리로 이어 건널 수 있게 한 곳, 아파트가 마치 성곽처럼 공터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가운데를 텅 비워둔 곳…. 특히 모든 구조가 완성된 뒤 입주하는 오늘날의 아파트와 달리, 시공사가 기본 틀거리만 공사를 해주면 입주자가 알아서 내부 구조를 채워넣어야 하는 곳도 있었다 한다. 아파트이기는 하지만, 밖에서 바라본 주거공간의 형태(창이나 베란다의 모습)이 조금씩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아파트가 도저히 들어설 수 없을 듯한 산 중턱을 깎아 아파트를 세운 자리에는, 억척스레 삶터를 일궈나간 사람들의 의지가 담겼다. 비록 낡고 불편하지만, 공터의 중심에 꽃밭을 가꾸며 공동체적 생활 양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끈끈한 이웃의 정이 남아 있다. 정 작가는 이들 오래된 아파트를 가리켜 '도시의 기념비'라고 설명했다.
"흔히 멋진 것만 기념비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오래된 아파트들이, 그 아파트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사건들을 증거하는 기념비라고 생각해요. 영광이나 승리를 기리는 기념비와 달리, 이런 기념비는 숨기고 싶은 역사인지도 모르죠.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건물을 없애는 것은 자본주의의 속성이겠지만, 모든 것을 경제적 논리로만 몰아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러나 그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아파트를 허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사의 단절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장소의 영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조만간 시민아파트가 모두 철거되어 그릴 건물이 사라지면, 서울 강북 특유의 공간과 그곳의 정서를 그림 속에 담고 싶다고 했다.
작가가 어렸을 때 본 종암동 풍경처럼, 우뚝 선 흰색 아파트와 붉은 지붕이 대조를 이루는 풍경은, 강북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지만, 또 지역마다 골목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재호 작가는 오늘도 오래된 골목과 낡은 아파트를 찾아,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선다. 세월이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소소한 서민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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