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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와 놀아주기 방문을 조금 열어두고 문틈으로 손가락을 꼼질꼼질하면, 스밀라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달려올 준비를 한다. 사냥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턱은 땅바닥에 닿을 듯이 낮추고, 앞발은 짐짓 몸 아래 슬쩍 감추고, 엉덩이는 살짝 들고, 뒷발은 동당동당 제자리뜀을 하다가 순식간에 내달린다. 제딴에는 '들키지 않게 몰래' 시동을 거는 것이겠지만,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것만 봐도 녀석이 뛰어올 게 빤히 보이니 웃음만 날 뿐이다.우다다 달려온 스밀라 앞에서 얼른 손가락을 치우면, '아까 그 녀석은 어디 감췄어?' 하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게 기울여 문틈 너머로 눈길을 주면서. 스밀라는 집에 사람이 있는 걸 알면 혼자 놀려고 하질 않아서, 문 앞에 앞발을 딱 모으고 앉아 고함을 .. 2008. 3. 2.
너의 맑은 눈 사람이든 동물이든 관계없이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의 눈동자에 내가 담겨 있고, 내 눈동자에 그가 담겨있다는 건, 생각해보면 경이로운 일이다. 탁구공만 한(고양이에게는 유리구슬만 한) 동그란 무언가에 온 세계가 담긴다는 것도, 두 눈이 마주보는 순간 두 세계가 이어진다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면, 그 경이로운 순간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열릴 뻔했을지도 모르는 한 세계가 다시 닫히는 것이다. 2008. 2. 29.
15만 원짜리 비닐 수십 만 대가 팔린 '대박 상품'이라는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를 샀다. 축축하고 퀴퀴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게 유쾌한 일도 아니고, 말려서 버리면 간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물건은 주문한 지 이틀만에 도착했다. 온라인 숍 고객 후기에는 배송이 늦다는 불평이 가득했는데 의외였다. 기대하면서 페트병에 모아 둔 음식물쓰레기를 붓고 건조기를 작동시키는데, 동생이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부른다. 1회 건조할 때마다 19시간을 연속 가동해야 한단다. 처음 듣는 얘기다. 사이트에 접속해 광고 페이지를 읽어보니 과연 '19시간 사용 시 한 달 전기료 2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한 달 동안 배출된 음식물쓰레기의 총량을 건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 내내 모두 더해서) 19시간' 정도이고, 전기료의 총합도 .. 2008. 2. 24.
나무 그늘 아래 목에 목걸이를 찬 고양이들은 거의 주인 있는 고양이다. 하나같이 느긋하고 한가롭다. 사진 속 고양이도 마치 참선하는 것처럼 오도카니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초록색 이끼 방석 위에 앉은 고양이. 나도 축지법을 쓰느라 지친 다리를 잠시 쉬면서, 고양이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고양이와 나 사이로 바람이 살랑, 스쳐지나간다. 그늘이 준 선물이다. 2008. 2. 5.
소용돌이 다른 부위의 털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듯 떨어지지만, 콧잔등은 조금 다르다. 콧구멍 근처 양쪽으로 조그만 소용돌이가 생겨 빙글빙글 돈다. 폭신폭신한 이마의 주름진 곳이랑, 콧잔등의 짧은 털을 손끝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2008. 2. 2.
초록색 불빛 스밀라가 골똘히 생각할 때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 초록색 불이 타오르는 것 같다. 차갑고도 따뜻한 불이 있다면, 고양이의 눈동자와 닮았겠지. 2008.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