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연예프로그램에서 몸값이 15억 원이라는 고양이 '보리스'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 토종 고양이와 비슷한 외모의 보리스는 러시아 고양이 서커스단의 '대표 연기자'라고 합니다.
가느다란 나무기둥을 앞발만으로 붙잡고 몸을 잽싸게 날려 순식간에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도 위태로운 묘기를 하듯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이 있습니다. 다만 서커스단의 고양이는
훈련을 통해 배운 기술이지만, 길고양이들은 생존과 안전을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자주 들르는 고양이 은신처에서 가느다란 환기 파이프 위에 앉아있는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폭이 5cm도 되지 않는 파이프입니다. 저를 보더니 경계하며 파이프 위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소심파 길고양이 2인방 중 한 녀석으로, 콧잔등에 딱지가 있어 '딱지냥'이란 별명을 붙여준 길고양이입니다.
사료를 주어도 꼭 눈치를 보며 나중에 들어와서 먹습니다.
외나무다리 위에 앉아 저를 빤히 바라보는 딱지냥의 얼굴에 수심이 어린 듯합니다.
저 인간이 어서 가야 내가 아래로 내려갈 터인데...하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고양이가 원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엉덩이도 붙이기 힘든 외나무다리 위의
삶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나무다리 위의 딱지냥 모습이, 길고양이들의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쓰였습니다.
길고양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길고양이를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분도 있지만, 길고양이에게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는 분도 종종 계십니다.
길고양이가 싫은데 좋아하라고 억지로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하시거나,
혼자 잘난척 계몽하려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싫어하는 대상이 있으므로,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싫었던 사람의 얼굴을 한번 떠올려보고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솔직히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굳이 바꾸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자기를 내세우는데, 몇십 년간 쌓여온 생각이 고작 사진 몇 장, 글 몇 줄로 바뀔 수는
없을 겁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므로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길고양이 블로그를 하면서 바라는 건, 제 글로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기적적으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이미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길고양이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분들도 한번쯤은 길고양이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또, 길고양이를 돌보는 분들이 '나 혼자만 길고양이를 보고 안쓰러워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구나' 하는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다 접어놓고 가장 단순한 이유 중 하나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팍팍한 길고양이의 삶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고양이들이, 조금은 덜 불행하게 이 지구상에서의 삶을 마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 바람들이 너무 거창하게 포장되거나, 혹은 오해받지 않고 이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토종 고양이와 비슷한 외모의 보리스는 러시아 고양이 서커스단의 '대표 연기자'라고 합니다.
가느다란 나무기둥을 앞발만으로 붙잡고 몸을 잽싸게 날려 순식간에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도 위태로운 묘기를 하듯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이 있습니다. 다만 서커스단의 고양이는
훈련을 통해 배운 기술이지만, 길고양이들은 생존과 안전을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자주 들르는 고양이 은신처에서 가느다란 환기 파이프 위에 앉아있는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폭이 5cm도 되지 않는 파이프입니다. 저를 보더니 경계하며 파이프 위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소심파 길고양이 2인방 중 한 녀석으로, 콧잔등에 딱지가 있어 '딱지냥'이란 별명을 붙여준 길고양이입니다.
사료를 주어도 꼭 눈치를 보며 나중에 들어와서 먹습니다.
외나무다리 위에 앉아 저를 빤히 바라보는 딱지냥의 얼굴에 수심이 어린 듯합니다.
저 인간이 어서 가야 내가 아래로 내려갈 터인데...하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고양이가 원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엉덩이도 붙이기 힘든 외나무다리 위의
삶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나무다리 위의 딱지냥 모습이, 길고양이들의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쓰였습니다.
길고양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길고양이를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분도 있지만, 길고양이에게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는 분도 종종 계십니다.
길고양이가 싫은데 좋아하라고 억지로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하시거나,
혼자 잘난척 계몽하려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싫어하는 대상이 있으므로,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싫었던 사람의 얼굴을 한번 떠올려보고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솔직히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굳이 바꾸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자기를 내세우는데, 몇십 년간 쌓여온 생각이 고작 사진 몇 장, 글 몇 줄로 바뀔 수는
없을 겁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므로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길고양이 블로그를 하면서 바라는 건, 제 글로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기적적으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이미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길고양이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분들도 한번쯤은 길고양이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또, 길고양이를 돌보는 분들이 '나 혼자만 길고양이를 보고 안쓰러워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구나' 하는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다 접어놓고 가장 단순한 이유 중 하나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팍팍한 길고양이의 삶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고양이들이, 조금은 덜 불행하게 이 지구상에서의 삶을 마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 바람들이 너무 거창하게 포장되거나, 혹은 오해받지 않고 이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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