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집고양이 종류가 따로 있나요?”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길고양이 중에는 털 짧은 한국 토종묘가 많습니다. 반대로 펫숍 등에서 판매하는 고양이는 이른바 ‘품종묘’가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질문을 한 분도 집고양이, 길고양이 종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곱게 자란 집고양이도 버려지거나 길을 잃으면 길고양이가 됩니다. 반대로 길고양이도 새로운 가정을 만나 입양되면 집고양이가 되지요. 길고양이나 집고양이 모두 살아가는 환경만 다를 뿐, 고양이라는 본질은 같습니다.
첫 만남 때, 퀭한 눈매의 스밀라.
2006년 7월 처음 만나, 저와 함께 3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는 스밀라도 길고양이였습니다. 장마철에 길에서 헤매던 스밀라는, 구조된 후에 한 차례 입양과 파양을 거쳐 저에게 왔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이 고양이를 키우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기 때문에, 파양된 스밀라를 임시보호하면서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은 아직 시작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거리에서 잘 적응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고양이도 있지만,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고양이의 모습도 가끔 보았기에, 우리 집에 잠시 머물렀던 고양이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쉴 때도 저렇게 몸을 움츠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2006년 9월경의 스밀라.
다행히 가족의 양해를 구하고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스밀라는 한번 버려지고 거리에서 헤맨 기억 때문인지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고양이가 낯선 곳에 가면 안전한 곳에 숨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스밀라는 마치 투명고양이가 된 것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인기척이 뜸해지면 슬그머니 나와 밥과 물을 먹고 은신처로 되돌아갔습니다.
털도 푸석푸석 짧고 비쩍 말라 머리만 커 보이던 2006년 가을 무렵의 스밀라.
나중에 이렇게 변했습니다. 무슨 곰돌이 인형 쿠션 같네요.
고양이가 인간처럼 섬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분도 있겠지만, 실제로 제가 지켜본 스밀라는 그랬습니다. 퀭한 눈동자에는 우울함과 두려움만 가득했습니다. 오랫동안 굶은 탓인지 비쩍 말라 2.4kg밖에 되지 않아서 더 딱해보였지요.(지금은 3.4kg의 토실토실한 고양이가 되었답니다) 퀭한 눈만 더욱 커다랗게 보이던 고양이였습니다.
그랬던 스밀라도 천천히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스밀라가 ‘여기는 내 집이구나’ 하고 완전히 마음을 놓게 된 것은, 아마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쯤 되는 무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밀라의 눈빛에도 여유가 생기고, 제가 안아주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머리를 부비게 되었습니다. 처음 스밀라가 제 입술을 제 다리에 부비부비 문지를 때, 그 감동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네요. ‘넌 내 거’라고 고양이가 표시하는 행동이었으니까요.
스밀라와 함께 살면서, 나와 다른 생명과 나누는 따뜻한 교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면 스밀라를 껴안고 스밀라가 기분 좋아 골골거리는 소리, 새처럼 삑삑 우는 소리를 들으며 위로도 받구요. 비록 말이 통하지 않지만, 표정이나 몸짓만으로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밀라가 눈을 '깜-빡' 하고 천천히 감았다 뜨는 것이, 만족스러움을 표현하는 '고양이식 인사'라는 것도, 서로를 믿게 되기까지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길고양이만 찍으면서 멀찍이서 바라봤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경험이지요. 스밀라가 그때 저에게 와 주어서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고양이를 구했다기보다는, 스밀라가 저를 우울의 밑바닥에서부터 열심히 끌어올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많이 친해졌지만, 아직도 스밀라는 100% 마음을 열진 않는 것 같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혹독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스밀라를 안고 문밖으로 나가는 시늉만 해도 질색하면서 발톱을 어깨에 박습니다. 다른 집 고양이들은 스스로 무릎에 올라와 잠도 자고 무릎고양이 노릇도 잘 한다는데, 스밀라는 안고 있어도 한 10초 쯤 있다가 못 견디고 뛰어내립니다. 그럴 때면 서운하지만, 언젠가 스밀라도 무릎고양이를 해줄 때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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