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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새끼 길고양이, 너무 짧아 애처로운 삶

by 야옹서가 2009. 4. 2.



봄은 길고양이들이 한창 태어나는 계절입니다. 계절마다 펼쳐지는 풍경이 다르건만, 자신이 태어난 계절만 기억한 채

세상과 작별하는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너무 짧게 세상에 머물렀다 가는 새끼 길고양이들입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3~5년 사이라고 하면 '더 오래 산 고양이도 보았는데 어떻게 된 거냐'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먹이 환경이 좋고, 주변에 해코지하는 사람이 없고, 조심성 많은 고양이라면, 평균 수명을 넘겨 살아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1개월을 살다 간 고양이와, 7년을 살다 간 고양이의 경우를 더한 뒤에 마리수로 나눈다면, 평균 수명은 내려갑니다.

특히 질병이나 굶주림, 체온 저하에 취약한 어린 고양이들은 혹독한 거리 생활에서 쉽게 타격을 받습니다.  


여느 때처럼 밀크티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던 어느 봄날, 밀크티가 지나가는 발밑에 쥐처럼 작은 뭔가가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
니 고등어 무늬의 새끼 고양이입니다. 어떤 이유로 세상을 떠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몸 크기로 보아

1개월이 채 안 된 어린 고양이입니다.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죽음의 의미를 알 리 없는 밀크티는, 머뭇거림 없이 어린 고양이를 스쳐 지나갑니다.

삶과 죽음이 무심하게 교차합니다. 급한 대로 낙엽을 그러모아 묻어주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무겁습니다.

고양이가 너무 어리다보니 눈도 제대로 떠보지 못하고 죽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빨리 무지개다리를 건넌 새끼 고양이에게 세상이란, 차가운 바람과 까슬한 마른 잎의 감촉으로만 기억되는 건 아닌지.


고등어무늬 새끼 고양이라면, 아마도 이 길고양이가 아빠일 공산이 큽니다. 숲에 숨어 짝짓기하는 광경을

두어 차례 보았으니까요. 길고양이의 서늘한 눈빛이 제게 이런 말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나도 이렇게 살아남기까지 쉽지는 않았어. 하지만 지금까지 버텨온 것 뿐이야." 

가끔 길고양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한다고 비난하는 글을 읽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길고양이가 무슨 천하무적이라서 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새끼만 낳아대는 게 아닌데...

길고양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그들의 삶뿐 아니라 죽음도 지켜보게 됩니다.

귀여운 고양이를 찍을 때는 마음이 행복해지지만, 가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고양이를 본 날은

하루종일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한 슬픔이 바위처럼 들어차 버겁습니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생각한다면,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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