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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길고양이 뒷모습에 담긴 이야기

by 야옹서가 2009. 3. 30.
길고양이를 처음 찍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찍힌 건 뒷모습이었습니다. 멀리서 길고양이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면, 고양이는 지레 겁먹고 달아나기 일쑤였으니까요.

가뜩이나 성능이 딸리는 카메라는 고작해야 심령사진처럼 흐릿하게 흔들리는 고양이의 윤곽만을 포착할 뿐이었습니다. 길고양이는 모델 되기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좋아하는 마음만 있을 뿐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몰랐습니다. 


뜻하지 않게 뒷모습 사진만 줄창 찍게 되면서, 고양이의 뒷모습에서 표정을 읽습니다. 그전까지는 투명한 유리 반구처럼 빛나는 고양이 눈동자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꼬리의 높낮이나, 등 근육의 모양새에서 고양이의 감정을 읽게 되고, 고양이와 함께 몸을 낮추면서 고양이의 눈높이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길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건, 고양이를 제대로 찍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바라보는 곳을 저도 함께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요.



길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고양이를 보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보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고양이를 찍으면서, 저도 하늘을 바라보지요.
 


쫑긋 치켜선 꼬리에서는 놀이에 여념이 없는 고양이의 긴장감을 느끼고




인적 드문 곳에서 명상에 빠진 고양이를 만나면, 저도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함께 쉽니다.




꼬리를 치켜든 채 위풍당당 걸어가는 길고양이를 찍으려고 몸을 낮춰 잰걸음으로 따라가면서 고양이의 눈높이를 배웁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고양이도 저에게 마음을 열고 바라봐준다는 걸,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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