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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비쩍 마른 길고양이, 뒷이야기

by 야옹서가 2009. 9. 28.
길고양이를 만나러 가면, 항상 먼저 마중 오는 녀석이 있고, 한 시간쯤 지난 다음에야 "저 인간 이제는 갔나..."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뒷북 고양이'가 있습니다. 왜 한 시간이냐면, 그때쯤 카메라의 메모리가 90% 이상
 차거든요.

메모리 공간 확보도 할 겸 가만히 앉아 사진을 정리하고 있으면, 아까는 안 보이던 녀석이 슬금슬금 눈치 보며 나타납니다.


우엥 울며 걸어오다가, 눈이 마주치자 '너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주저앉아 딴청을 부립니다.

어딘가 불리할 것 같으면 모른척 하는 게 고양이의 특징.



저도 덩달아 모른척하고 가만히 있으면, 슬며시 가까이 옵니다. 석 달 전에 만났을 때와 다를바 없이 홀쭉한 얼굴이지만,

건강상태는 그리 나빠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로 남는 게 안타까워서 뭐라고 이름을 붙여줄까 하다가,

깍두기냥이라고 불러봅니다. 보통 입술과 볼이 뾰족한데, 볼이 쑥 들어가서 얼굴이 네모지게 보입니다. 


양 볼이 움푹 패어 광대뼈가 드러난 사람 같기도 합니다. 얼굴이 마른 고양이는 왠지 눈빛이 더 형형해 보입니다.

눈곱을 좀 닦아주고 코에 난 생채기가 아물면, 야인 같은 이미지도 좀 더 부드러워질까요?

네모냥과 깍두기냥 둘 중에 어느 이름으로 부를까 했는데, 역시 깍두기냥 쪽이 더 귀여운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고양이는 저에게 '비쩍 마른 길고양이'가 아니라, 이름 있는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멀어지는 고양이는 꼭 한참 가다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돌아봅니다. 그 자세가 '안전거리 확인'이기보다는,

저에게 건네는 인사이기를 바랍니다. 만났다 헤어지는 과정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동안, 경계하면서도

마음 한켠을 조금씩 열어두는 길고양이의 삶은 그렇게 이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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