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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쓰레기장에 사는 섬 고양이

by 야옹서가 2009. 9. 25.
동도와 서도에서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대신 소각처리한다. 생활폐기물과 함께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는 길고양이에게 가장 구하기 쉬운 먹잇감이기에, 길고양이들은 스스럼없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동도의 한 쓰레기 소각장에 도착했을 때, 서너 마리의 고양이가 먹을 것을 찾아 배회하고 있었다. 땅 속으로 스며든 쓰레기가 양분이 되었는지, 온통 암벽과 쓰레기로 가득 찬 이곳에서 노란 유채꽃밭만이 홀로 황홀하다. 유채꽃이 피어난 지점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쓰레기장이 아닌 꽃밭이라 불러도 어색함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그늘 아래에는 길고양이의 힘겨운
삶이 숨겨져 있다.

 
인기척을 느낀 검은 고양이가 황급히 잰걸음으로 달아난다. 나와 길고양이 사이에는 꽃밭을 사이에 두고 10여 미터 떨어진 곳인데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달아난 고양이를 보며 아쉬워하는 것도 잠시, 바로 발밑에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방금 전까지 뭔가 주워먹고 있었던 듯, 입맛을 다시며 입가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핥는다.


고양이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정적이 흐른다. 미동도 하지 않는 고양이의 얼굴에 긴장이 가득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양이의 머릿속에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인간이다!'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지?'
'어떻게 하지? 어느 방향으로 달아나야 하나?'

고양이는 결심한 듯 방향을 돌려 쓰레기 소각장 한가운데로 몸을 날린다. 그가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자리에는
버려진 대파 무더기가 뒹굴고 있었다.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각장에는 불타다 남은 종이상자며 캔, 비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분리수거를 하려 해도
섬 밖으로 가져나가기 어려우니 소각처리는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길고양이는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 멀어져간다. 한때 분홍색 젤리처럼 매끈했을 발바닥에는 세월의 때가 묻었다.
길고양이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이 어떠했는지 말해주는 발바닥이다.  


그날 이 근처에서 내 눈에 보인 것만 네 마리였으니, 아마 인적이 드문 밤 시간에는 더 많은 고양이들이 쓰레기 소각장 으로 모여들 것이다. 생선을 다듬고 나온 부산물이나 상품성 없는 잡어 등을 이곳에서 한데 모으고, 고양이에게 '다른 곳에 굳이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먹이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킬 수 있다면, 고양이들이 민가 가까이로 다가와 주는 피해를 줄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먹이요법과 더불어 거문도에서 필요한 것이,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통한 개체 수 조절이다. 마침 주민 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요청해온 분이 있어, 고양이를 데리고 함께 바다를 건넜다. 

 

눈앞의 깊은 바다가 아찔할 법도 한데, 고양이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두려움도 반복해서 겪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되는 모양이다. 바다를 건너는 고양이의 의연한 표정을 보며, 나도 기운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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