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을 지나는데,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이 둥글게 뭉쳐져 있는 것이 보여
눈길을 돌립니다. 비닐봉지인가, 고양이인가 긴가민가해서 한참 바라보니
귀끝이 뾰족합니다. 검은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군요. 살금살금 다가가 봅니다.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 화단 수풀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숨었으면서도
호기심은 어쩌지 못해 금방울처럼 동그란 눈으로 이쪽을 빤히 봅니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눈동자만 댕그랗게 빛납니다. 모두가 검은 털옷 사이로
더욱 반짝이는 황금빛 눈동자는, 검은 고양이 특유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그러나 이쪽이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검은 고양이의 눈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라고, 흉물스럽다고 돌을 던졌을 사람들의 시선이
검은 고양이의 겁먹은 시선에 모두 담겨 있는 듯합니다.
제가 멀찍이 물러나서야, 고양이는 안심하고 화단 밖으로 나옵니다. 근처를 산책하며
사진을 찍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을 때, 고양이는 한가로이 철창 너머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 너머로는 인간이 가지 못할 것을 알기에 여유를 부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쳐놓은 철망이 길고양이를 향한 인간의 마음의 벽은 아닌지, 희미해져가는
검은 길고양이의 실루엣을 보며 생각합니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 [고양이 여행]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붕 밑 길고양이, '은밀한 만남' 현장 (9) | 2011.05.18 |
---|---|
초여름 졸음 쫓는 길고양이, 시원한 하품 (7) | 2011.05.14 |
봄나들이 나선 아기 길고양이, 야무진 얼굴 (20) | 2011.05.09 |
서먹한 길고양이들, 화해하는 법 (8) | 2011.05.02 |
짝귀가 된 길고양이, 고동이 (7) | 2011.04.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