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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짝귀가 된 길고양이, 고동이

by 야옹서가 2011. 4. 30.

제나 조심스러움을 잃지 않던 고동이지만, 세월의 흐름은 조심스런 고양이의 마음도

돌려놓는 듯합니다. 소리없이 나와 있다가, 가만히 앉아 웅숭깊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곤

하는 것입니다. 눈높이를 낮추고 아는 고양이와 묵묵히 시선을 교환할 때면,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넵니다. 

 

윤기가 자르르 도는 고등어무늬 망토에 뾰족 솟은 삼각형 귀가 매력이었던 고동이는

한쪽 귀끝이 이지러져 짝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등어무늬 고양이 중에서

고동이를 구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표식이 생긴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싸움 끝에

코뼈가 휘어 얼굴이 망가진 권투선수를 보는 것도 같아 마음이 짠합니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가끔 이렇게 웃기는 메롱~ 표정을 짓기도 하는 고동이.

고동이를 바라볼 때면 이제는 볼 수 없는 억울냥을 생각합니다. 입술 위에 카레점이 있던,

말간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억울냥. 고동이와 조심스레 콧잔등 키스를 나누던 그 모습은,
 
지나간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만날 때면,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다시 만난 길고양이의 모습이 유독 반가운 것은, 마지막이 아니라는 기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동이의 고동색 망토가 유독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런 날입니다. 짝귀가 되었지만, 건강히 밀레니엄 고양이 일족으로 버텨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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