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꼭지’는 목동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화단에 살다가 집고양이로 들어앉았다. 하얀 털옷, 핏줄이 다 비칠 만큼 투명한 핑크빛 귀, 딸기맛 젤리처럼 탐스러운 코. 새초롬한 아가씨 같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이마 한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처럼 세로주름이 있다. 이마의 세로주름은 고생할 상이라는데, 이 녀석은 유년기에 고생을 다 털고 청년기부터 팔자가 펴질 운명이었나 보다. 험하게 살아온 길고양이도, 사랑받으면 이렇게 예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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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가 입양된 집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생후 3주~9주 이내에 데려오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 무렵이면 고양이가 사회성을 훈련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꼭지’도 어렸을 때 이 집에 왔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비교적 적다. 처음에는 낯선 내 얼굴을 보고 소심한 목소리로 하악질을 해댔지만, 나중엔 앞발로 내 허벅지를 꾹꾹 누르면서 인사도 했다.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리니 짧은 꼬리를 세우고 다가와 구경하다가, 조각상처럼 얌전히 두 발을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앉아 나를 바라본다.

제 이름 하나 변변히 갖지 못한 존재들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는 건,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고양이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집 앞을 배회하는 길고양이들은 그저 ‘고양이 떼’일 뿐이지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은 미묘하게 다른 그들의 얼굴과 무늬를 식별하고,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준다. 꼭지도 그렇게 이름을 받았고, 길고양이에서 집고양이로 거듭났다.


‘꼭지’는 운이 좋은 경우지만, 어떤 핏줄을 타고 태어났는지에 따라서 고양이의 삶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혈통과 품종에 따라 고양이의 몸값이 정해지고,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고양이들은 쉽게 버려진다. 고양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에게 기껏해야 2~3만원인 한국 토종고양이들은 매력이 없다. 길에 버려졌다 포획된 고양이 중에서도 이른바 ‘뼈대 있는 고양이’들은 다시 입양될 확률이 높지만, 흔해빠진 한국 토종 고양이는 대부분 안락사 되는 운명을 맞는다. 그러나 고양이를 데려올 때의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한 목숨의 가치까지 덩달아 싸구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녀석은 가치 있기 때문에 오래 살아야 하고, 어떤 녀석은 ‘쌈마이 인생’이니 죽어도 된다는 건 인간의 논리다. 모든 생명의 목숨값은 동일하다.  

일각에서  한국 토종고양이를 가리키는 새 이름을 공모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부정적인 이름은 부정적인 인상을 낳고, 그 인상이 길고양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토종 고양이에 대한 제대로 된 명칭이 없는 까닭에, 길에서 종종 눈에 띄는 단모종의 토종고양이는 대부분 ‘도둑고양이’로 불린다. 심지어 ‘도둑고양이’가 무슨 품종의 하나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새로운 명칭을 정착시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누가 무슨 권위로 토종고양이의 품종 명칭을 정하느냐고 딴지 거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진다고 갑자기 토종고양이들의 위상이 격상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나 ‘들고양이’ 등 부정적인 표현으로 부르는 것이 대세이다가, 요즘 들어 비교적 중립적인 ‘길고양이’란 표현으로 바뀐 것처럼, 한국 토종고양이를 지칭하는 단어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길고양이 불임수술을 지원하는 태능종합동물병원에서 한국 토종고양이 이름을 공모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05년 8월부터 시작된 이름 공모는 아직 진행 중이며 다양한 명칭이 제안되고 있다. 몇몇 회원들의 의견을 옮겨본다.  

'쿄숏 사랑'회원-코리아 숏 헤어->한국산 털 짧은 고양이라는 뜻
'찡찡이&뮤'회원-참고양이->순수한 우리말 '참'에는 '바르다, 좋다, 진실되다' 등의 뜻이 있다.
'리리스' 회원-나비->친숙하고 편한 이름이라,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큰 어른들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패트리샤' 회원-한얼고양이-> 한민족의 얼이라는 뜻. 가난하고 힘든 세월 사람과 함께 살아온 동물이라서.
'yeony102' 회원-복고양이->요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복을 불러오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길 바라서.

현재는 ‘아메리칸 숏헤어’ 종에서 착안한 ‘코리언 숏헤어’를 줄여서, 한국 토종 고양이를 ‘코숏’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대세다. 국내외에서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고 의미가 명확하기는 하지만, 개성이 없어 보이는 외래어 조어라는 점에서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이름 중에서는 참고양이’가 가장 유력한 후보인 것 같다. 우리 고양이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도, 부르기 쉬운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이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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