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이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치지 못할 책방이 있다. 타이완 여행을 계획 중인 애묘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길고양이 후원 책방, 유허서점(有河BOOK)이 그곳이다. 작년 6월 타이완 고양이 여행을 떠났을 때, 고양이 마을 허우퉁과 함께 꼭 가봐야할 장소로 일찌감치 점찍어둔 곳도 여기였다. 고양이, 미술, 책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언제나 마음 속에 그렸던 고양이 책방의 이상향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으니까.
단수이 역에서 물가를 따라 걷다보면 파란색 책방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책방 왼쪽에는 돌멩이에 그린 듯한 사실적인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헨리숍'도 함께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헨리숍은 고양이 그림작가 헨리 리의 그림을 토대로 다양한 팬시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인데, 몇 년 전 스톡홀름 여행 중에 헨리숍 분점을 처음 발견하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타이완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소개될만큼 유명한 고양이 아트숍이기도 하니, 책방을 들렀다 나오는 길에 겸사겸사 헨리숍에 들러 고양이 기념품을 사도 좋겠다.
유허서점은 2층에 있다. 서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길고양이 문지기를 지나쳐야 한다.
책방 안에는 온통 고양이. 그날 책방 안팎에서 만난 고양이만도 예닐곱 마리였으니, 고양이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기엔 충분했다.
유허서점은 책방과 북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일반 서점과는 다르게 느슨하고 편안한 분위기다. 그야말로 고양이스러운 공간. 서점 규모는 작아도 인문, 예술, 생태, 여행 분야의 서적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어, 꼭 찾아올 사람만 찾아오는 특화된 서점이다. 특히 고양이 책도 다수 갖춰져 있어서, 굳이 대형서점에 가지 않아도 타이완에서 출간된 고양이 책들을 일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고양이 여행을 할 때면 꼭 그 나라의 서점을 찾아가보는 나로서는, 이렇게 한 군데 고양이 책을 모아놓은 곳이 더욱 반가울 수밖에.
계산대와 커피를 만드는 곳을 겸한 테이블 맞은편에는 이렇게 고양이 쉼터가 있어서,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쉬거나 돌아다닌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에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깔개는 역시 나라를 막론하고 깔깔한 골판지다. 스크래처로도 쓸 수 있으니 일석이조.
책방 안에서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공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곳에서 고양이들은 평화롭다.
작년에 들렀을 때 판매 중이던 2012년 고양이 달력에는 위 사진에서처럼 단수이 주변을 유유히 산책하는 고양이를 필두로 다양한 사진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올해는 또 어떤 사진으로 달력이 만들어졌을지 궁금해진다. 길고양이 사진을 토대로 만든 에코백도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기념품 중 하나다. 유허서점에서는 단수이 길고양이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달력과 사진엽서를 위탁판매하면서 길고양이를 돕고 있다. 또한 단수이 일대의 길고양이 지도를 비치하여 고양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전단지 형식으로 접어 보관할 수 있는 지도 뒷면에는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그림과 글이 적혀 있어서 유용하다.
부인과 함께 서점을 운영 중인 데니스 첸 씨께 미리 준비해간 길고양이 사진 액자를 선물로 드리면서 "한국 길고양이 사진"이라고 알려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 길고양이의 매력을 전할 수 있어서 뿌듯했던^ㅅ^ 나라는 달라도 길고양이를 응원하는 마음은 역시 같다는 걸 새삼 느낀다.
단수이를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만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유허서점에 꼭 한 번 들러보시길. 대만의 길고양이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뿐더러, 길고양이를 응원하는 이 책방에서 뿌듯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세계 고양이 여행을 다니는 동안, 책과 고양이가 함께한 다양한 공간을 접하게 된다. 그때마다 나만의 고양이 책방을 꿈꾼다. 마당 한켠에는 길고양이가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급식소를 마련해 두고, 서점 안에는 동물 관련 서적이 가득히 꽂힌 책방. 혹은 책방이 아니더라도 다치바나 다카시의 개인도서관 '고양이 빌딩'처럼, 거대한 고양이 그림이 건물 한 면을 가득 채운 작은 도서관이어도 좋겠다. 때때로 그곳에서 소박한 고양이 전시를 열고, 길고양이 후원상품을 판매해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수익금을 나눔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 언제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요원하지만,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고양이 책방이 다른 나라 어딘가에서 활발하게 운영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이 난다. 내가 꿈꾸는 삶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산 증거이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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