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고양이 여행을 다녀온지 무려 1년만에 정리해보는 타이완 여행기가 슬슬 끝이 보인다. 원래 일정상 제일 먼저 다녀왔던 곳이 주펀이었고, 이날은 다른 곳을 가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머물며 고양이들과 여유롭게 놀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펀행 버스에서 물건을 하나 분실하는 바람에 계획대로 여행하기가 힘들었다. 낯선 나라에서 여행을 하는 동안 사건사고 없이 여행을 잘 마치기를 바라지만, 가끔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곤 한다. 골목 안쪽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주펀은 고양이 마을 허우퉁과 함께 타이완에서 가장 인상깊은 여행지 중 하나였지만, 씁쓸한 분실의 추억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여행기의 뒷전으로 밀려난 것 같다.
주펀은 중국 국민당 정부군이 타이완 원주민 2만 명을 학살한 '얼얼바'(2·28)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로도 유명해서, 타이완 사람들뿐 아니라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을 겁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애묘인들이 좋아할 만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타이완 사람들의 성향을 알 수 있는 가게 중 하나가 고양이 아트상품 가게 '헨리숍'인데, 주펀에도 분점이 있다. 타이페이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매장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고양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한쪽 앞발을 들어 손님을 부르는 모습에 이끌려 다가가보면, 자동문 앞쪽으로 고양이들의 천국이 펼쳐진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념품 가게 중 하나. 헨리 리가 그린 돌고양이 그림을 토대로 만든 고양이 모양의 마우스패드 같은 소품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좋다.
지우펀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고양이들. 관광객이 제법 많은데도 개의치않고 낮잠을 자거나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있다.
관광객이 오가는 길목에서 이렇게 식빵을 굽고 있는 녀석도. 고양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일본의 여름도 습하고 무더워 다니기가 힘들었지만, 6월의 타이완은 한 술 더 뜨는 날씨였다. 그래서 고양이들도 체력을 아끼기 위해 낮에는 이렇게 잠자고 있는 녀석들이 많은 모양이다.
주펀(九份)은 과거 이 일대에 아홉 집만 살았을 만큼 자그마한 동네였는데, 마을이 산을 따라 형성되다보니 물건을 들여오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집이 쓸 물건을 한번에 구입해와서 다시 나누었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양이가 누운 자리를 보니,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겠다.
마음이 복잡하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잠시 머물며 고양이와 함께 쉬어간다. 고양이는 어쩔 수 없는 일 앞에서도 위로를 주는 동물이기도 하니까. 아마도 주펀에서 가장 전망좋은 잠자리를 얻었을 녀석. 사람들이 귀여워하며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달아나지 않는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이 근처에 오래 머물며 사진을 찍었을 텐데, 이 즈음엔 이미 물건이 없어진 걸 깨달은 상황. 하필 잃어버린 것이 전화기였고, 이날의 숙소도 애매하게 된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다. 오랫동안 기대했고 그만큼 어렵게 시간 내어 찾아온 곳이지만, 다른 여행지와 달리 한가롭게 사진 찍을 경황이 거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해가 저물고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길, 아까와는 다른 모습으로 가게들이 불을 밝힌다. 주펀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건 아마 다른 좋은 기회에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는 뜻이 아닐까. 마음은 울적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아쉽고 해서 기념으로 고양이 모양의 조그마한 오카리나를 사들고 시내로 돌아간다. 다음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펀의 길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며.
6/26(수) 오후 7시,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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