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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타이완

스펀 폭포의 행운 고양이

by 야옹서가 201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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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북부 신베이 시의 작은 마을 스펀(十分)은 풍등 날리기로 유명한 곳이다. 종이로 만든 등의 사면에 소원을 적고 등 안에 불을 붙인 다음 하늘로 띄워 보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에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에는 묘한 끌림이 있다. 꼭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으면 뭐 어떤가. 소원을 적기 위해 고민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절실히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 딱히 관광명소라 할 만한 곳이 없는 시골 마을로 오로지 풍등을 날리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줄을 잇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먹물 적신 붓을 들어 정성껏 뭔가를 적어 내려가는 사람들의 소원은 뭘까 궁금해져 기웃거린다. 어떤 이는 세계평화처럼 거창한 목표를 적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가족의 평안 같은 현실적인 소원을 빈다. 기찻길 따라 수십 개의 풍등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 소원도 슬쩍 얹어본다.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이 지금보다 좀 더 평안하게 살게 해 주세요’ ‘가는 길마다 고양이들을 만나게 해 주세요’ 하고.

 

풍등이 날아오르는 기찻길을 뒤로하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날의 목적지는 신베이 시에서 ‘타이완의 나이아가라 폭포’로 자랑하는 스펀 폭포였다. 폭포 구경도 좋지만, 내 목표는 폭포 옆 노천카페였다. 이곳에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스펀 역에서 스펀 폭포까지는 도보 30여 분이 넘는 거리라 했다. 고양이 여행 중에는 하루에 몇 시간씩 내리 걷는 건 기본이니 그 정도쯤이야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도심 번화가를 걷는 것과, 인적도 없는 시골 차도를 걷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중간에 관광안내센터가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들렀지만, 그곳에서 받은 지도의 스펀 폭포 위치가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지금까지도 꽤 걸었는데 앞으로도 그만큼은 더 가야 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 지도마저도 무척 간략해서 혼자 찾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그 순간 뒤늦게 떠오른 생각 하나. 초행길의 도보 30여 분은 체감 상 1시간에 가까운 거리이고, 헤매다 보면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걸. 순간 고민했다. 지금까지 걸은 게 아깝지만 돌아가는 게 나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야 할지. 때마침 부슬비도 내리고 하늘까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일본 영화 ‘안경’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리 걸어도 찾는 숙소가 나오지 않자 불안해하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이랬다. “불안해지는 지점부터 2km를 더 가라.” 그래,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계속 가기로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스펀 폭포의 노천카페에선 기대했던 대로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다. 같은 배에서 나온 것이 확실해 보이는 고동색 얼룩무늬 고양이가 넷, 쌍둥이 같은 노랑둥이가 둘, 흰 바탕에 고등어무늬가 있는 고양이까지 일곱 마리가 숙식하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카페를 찾는 손님들에게 간식을 얻어먹기도 하고, 밥그릇에 놓인 밥을 먹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차가 상시 다니는 곳도 아니니 산책을 다니다가 로드킬을 당할 우려도 없고, 영역 다툼을 하느라 피 흘릴 일도 없다. 고양이에겐 그야말로 행운의 서식지라고나 할까.

 

폭포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고양이 곁에 앉아 기운을 충전했다가 다시 스펀 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무사히 여행을 마쳤음에 감사하면서. 오직 고양이만을 찾아 낯선 곳을 떠도는 여행자에게 행운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목적지에서 성사된 고양이와의 우연한 만남만큼 짜릿한 행운은 없다.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 잡고 가는 것도 아니고, 처음 가보는 목적지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조차 없지만 그래도 떠난다. 삶이 예측할 수 없기에 막막하고 때론 불안하듯 고양이 여행도 마찬가지지만, 일단 가보는 거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꿈만 꾼다고 해서 소원이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

 

‖ 일곱 마리 고양이들이 노천카페를 지키며 손님을 맞이한다. ‖

 

 

‖ 식빵 굽는 고양이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아이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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