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안에서도 아담한 섬의 느낌이 나는 곳을 돌아보고 싶어서 선택했던 비양도. 비양봉에 올라 보는 풍경도 시원했지만, 만약 비양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해안을 여유있게 돌아보는 쪽을 권해드리고 싶다. 비양봉도 오르고 해안도 돌아보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기 때문. 비양도에는 배가 하루에 세 차례만 들어오기 때문에, 오전 9시 배로 들어온 사람은 12시 16분 배로 나가거나 오후 3시 16분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오후 3시까지 머물기엔 시간이 좀 남고 12시 배로 나가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바닷가에 발도 담가보고 쉬기도 할 생각이면 해안선을 따라 돌아보는 쪽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제주도의 현무암을 닮은 길고양이도 뚜벅뚜벅 걸어간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보려 했지만 녀석은 무심하게 나를 스쳐지나가더니 바위 틈으로 사라져버린다. 몸이 검은빛이라 가까이 다가갔을 땐 어디로 갔는지 찾기도 어려울 정도. 검은색 고양이야말로 제주도에 잘 어울리는 보호색을 가진 고양이다.
비양도의 소심한 길고양이보다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건 동네 개들이었다. 보통 고양이 여행을 다닐 때는 개 사진은 건너뛰지만, 섬마을 개들의 일상도 그것대로 흥미로워 사진을 찍어둔다. 사람도 견디기 힘든 30도가 넘는 날씨에 견딜 수 없었던지, 뜨거운 햇빛을 해 그늘로 숨어들어 낮잠을 잔다. 내가 가까이 가니 눈을 번쩍 떴지만, 귀찮은지 그대로 잠들어버린 녀석.
고양이 발자국만 남아있는 시멘트 바닥 위에는 비양도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누렁이가 오가는 손님들을 반긴다. 이 녀석은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항구 쪽으로 나가 앉아있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따라다니는데, 나를 점찍은 모양인지 내 앞에서 떠나질 않아 고양이 용으로 챙겨둔 사료를 나눠주었다. 관광객 중에는 녀석을 예삐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정확한 이름인지는?
예삐가 낳은 강아지가 문틈으로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따라 나왔다. 코끝이 검고 눈이 맑은 토종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정이 가는 얼굴이다. 순둥이 같은 인상이라 그런지...
엄마에게 이마를 쿵쿵 부딪치며 어리광을 부리는 강아지. 엄마 다리밑으로 들어가 그늘을 삼기도 하며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 그늘에 쏙 들어갈 수 있는 그 때가 좋은 때다. 나중에는 엄마를 찾아도 도움을 받지 못할 때가 올 테니까...
항구 근처의 펄랑못에 있는 다리를 따라 걸으며 비양도 바닷가 산책을 마무리한다. 항구 옆 바닷가 근처에는 선인장 군락지도 있어 새삼 놀랐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염생식물 도감을 찾아보게 될 정도로 염생식물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고. 식물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어머니 덕에 관심사가 한 가지 더 늘어간다. 굳이 고양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살아 숨쉬는 생명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는 여행이라면 그걸로 만족스럽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기에 더 좋았고, 고양이 여행에서 자연을 찾아가는 여행으로 범위를 넓혀보는 경험도 좋았던 비양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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