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간 여행을 다녀오느라 집을 비웠더니, 스밀라가 서운했던 모양이다. 어제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해서 짐 먼저 책상 위에 풀어놓고, 너무 피곤해서 정리도 안 한 채로 잠이 들었더니 아침에 스밀라가 저러고 있다. 3일 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던 귀중품 보관지갑인데, 아예 베개 삼아 깔고 앉았다. 샐쭉한 표정이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하는 듯하다.
모른 척, 못본 척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있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책상 위에서 저 자세로 누워 나를 내려다보면서 '언제쯤 일어나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무심한 듯 누워있지만 귀만은 이쪽으로 돌리고, 키보드를 치는 내 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있다. 올 한 해는 그간 계획만 해두었던 여행지 목록을 하나씩 돌아보며 부지런히 여행을 다녀올 텐데, 스밀라도 이해해준다면 좋겠다. 내가 없을 때도 어머니와 동생이 스밀라를 잘 챙겨주겠지만... 내가 있을 때면 꼭 내 방 책상이나 머리맡에 누워있는 녀석이, 내가 여행을 다니고 있을 때면 빈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어머니 곁에 앉아있다고.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을 두려워하던 스밀라도, 함께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사람을 그리워하는 고양이가 되었구나 싶다. 한번 길에 버려졌다가 입양되고, 입양 갔던 집에서 다시 파양을 겪으며 마음의 상처가 많았던 스밀라는 다른 집 고양이들처럼 무릎고양이를 해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이 정도로 마음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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