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들판은 어쩐지 가을에 어울리는 풍경이지만, 6월 초의 가파도에서는 아직 남아있는 보리밭 덕에 한 발 앞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 풍경도 며칠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빈 들판만 남겠지만, 그나마 이 풍경을 마음에 담아올 수 있어 기뻤다.
하지만 실제로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에서 느껴지는 가을 냄새와 달리, 이른 더위 때문에 내내 모자와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옷차림을 하고 걸어야 했다. 멀리서 걷고 있는 어머니 모습도 차양모자와 스카프, 마스크로 완전무장한 모습이다. 그래도 바닷바람이 불어줘서 더위 속에서 조금은 걷기가 수월했다.
사람이 더울 때면 고양이도 더위를 탄다. 보리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것만으로는 더위를 이길 수 없었던지 고양이는 시원한 그늘을 찾아 총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코팩 무늬가 있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눈매의 고양이다. 뒤따라가 보니 녀석만의 은신처가 있었다.
해안 지역의 가옥들은 바닷바람이 거센 탓에 지붕이 낮다. 그리고 대개 주황색 방염도료로 칠해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가파도의 민가 지붕도 대개 주황색 납작지붕인데, 고양이가 선택한 곳은 짓다 만 듯한 모습으로 시멘트 마감을 한 오래된 주택이었다. 인적도 드문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다는 판단을 했으리라.
어느새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잘 준비를 한다. 한낮이 뜨거울 때 잠을 자면서 체력을 보충해두어야, 이따가 밤이 찾아왔을 때 힘껏 먹이사냥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녀석 왜 눈매가 저렇게 만화 주인공처럼 날렵한가 했더니, 눈머리 부분에 검은 얼룩이 있어 마치 아이라인을 그린 것처럼 눈매가 또렷하고 커 보였던 거다. 내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니 살짝 언짢은 얼굴을 하고 귀를 뒤로 젖힌다.
그래도 지금은 잠자는 게 우선. 체력을 확보하기 위해 나무그늘 아래 누워 단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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