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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5대5 가르마' 길고양이 '대오아저씨'의 매력

by 야옹서가 2006. 9. 4.
5대5 가르마를 탄 앞머리, 의뭉스럽게 뜬 실눈, 코 밑의 애교점까지! 넉살 좋은 중년 남자를 닮은 길고양이 ‘대오아저씨’는 애묘인 사이에서 유명인사다. 대오아저씨와의 생활을 재미있는 그림과 사진으로 소개해 온 일러스트레이터 훅끼(본명 신혜원, 24)씨를 만났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는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그런데 왜 이름이 하필 대오아저씨일까. 혹시 '대오각성(大悟覺醒)' 할 때의 그 대오? 이름에 얽힌 사연부터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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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정직한 5대5 가르마, 의뭉스럽게 뜬 실눈, 코 밑의 애교점까지, 넉살 좋은 중년 남자를 닮은 대오아저씨가 겅중겅중 뛰어온다. (사진 제공: 훅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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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끼씨가 직접 그린 부채 그림 속에 등장하는 대오아저씨의 모습이
듬직하다.

“처음 봤을 때 너무 웃겼어요. 머리 모양이 딱 5:5 가르마인 거예요. 못생기고 밉상인데 어쩐지 짠해 보였어요. 한동안 ‘오대오, 오대오’ 하고 부르다가, 나이도 많은데 함부로 ‘야자’ 트기엔 그렇고 해서 ‘대오아저씨’로 불렀죠.”

훅끼씨가 대오아저씨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웃는다. 오래 전부터 대오아저씨를 지켜봐왔다는 동네 칼국수집 아줌마의 증언에 따르면, 아저씨는 여섯 살이 넘었단다. 사람으로 따지면  40대에 해당하는 나이다. 도시에서 사는 길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이 3년이라니, 그 두 배를 살아온 셈이다. 그만큼 살아오면서 아저씨도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이다.

대오아저씨가 사는 곳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훅끼씨의 본가 근처다. 주변에 농가가 대부분인 시골이다. 경기도 수원에 작업실 겸 자취집을 꾸린 훅끼씨는 1주일에 2~3일 본가에 들른다. 동물을 좋아하는 훅끼씨의 부모님은 유기동물을 위한 음식을 집 근처에 놓아두곤 했는데, 덕분에 버려진 개나 고양이가 끊임없이 찾아온다. 3년 전부터 오기 시작한 대오아저씨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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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끼씨 집 앞에서 일광욕을 하며 시원한 표정을 짓는 대오아저씨. 이제는 자기 집처럼

친숙하게 앞마당을 드나든다. (사진 제공: 훅끼)

“우리 집이 동네 동물들에게 소문 다 났어요. 저 집 가면 먹을 게 있다고. 그런데 대오아저씨에게 유독 정이 가다 보니 다른 길고양이 밥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놓고, 대오아저씨 밥은 집 울타리 안에 놓게 되더라고요. 어느새 식구처럼 된 거죠.”


처음 만났을 때는 대오아저씨도 여느 길고양이처럼 사람을 두려워했지만, 유독 훅끼 씨에게는 몸 만지는 걸 허락했단다. 그래도 그만큼 친해지기까지 1년 가까이 공을 들여야 했다. 이제는 훅끼씨가 발가락을 쭉 내밀어 주물주물 안마를 해도, 한량처럼 벌렁 드러누워 온몸을 맡긴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점도 있다.

“옛날에 막대기로 맞은 적이 있나 봐요. 요즘도 막대기 비슷한 것만 들면 도망가거든요. 집이 시골이라 앞마당 잔디도 깎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혹시 겁먹을까 봐 아저씨가 없을 때 눈치 보면서 얼른 치우느라 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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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곁들인 훅끼씨의 재기발랄한 글과 그림 덕분에, 대오아저씨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사진 제공: 훅끼)

대오아저씨 얼굴에는 흉터도 있고, 언뜻 보기엔 인상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싸움도 제법 하는 중년 고양이가 아닐까 싶지만, 정작 그 방면으론 젬병이란다. 근처에 대오아저씨 말고도 길고양이가 많은데, 종종 영역 싸움을 하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피떡이 되어 돌아온다.

얼굴은 쌈짱, 싸움은 젬병인 매너 좋은 아저씨

“어찌나 싸움을 못하는지…보고 있으면 안타까워요. 지금도 눈 뜨면 흉터투성이예요. 몸에 땜통도 되게 많고요. 다쳤을 때 마이신을 아주 조금만 밥에 섞어 주면 낫는다는데, 그렇게 치료해준 적도 숱해요.”

대오아저씨는 집고양이로 눌러앉진 않았지만,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훅끼씨 본가로 마실을 나온다. 새벽 4시쯤 아침 먹으러 오고, 점심 때는 창문 앞에 앉아서 앵알앵알거리며 가족들을 부른다. “이렇게 만날 얻어먹기만 하다가 우리가 밥 안 주면 어쩔 거냐?”하고 가족들이 놀리면, 다음날 보란 듯이 쥐를 잡아다 놓고 가기도 했다. 공짜 밥을 얻어먹기 머쓱했던 대오아저씨의 인사치레인 셈이다. 최근에는 어디서 데려온 업둥이인지, 어린 삼색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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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삼색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며 교육을 시키는 대오아저씨. 숨겨둔 자식일까?

아니면 매너 좋은 아저씨가 거둔 업둥이일까? (사진 제공: 훅끼)

“삼색이를 엄청 챙겨요. 뭘 먹으면 옆에서 가르치고, 물 먹는 장소도 알려주고…. 대오아저씨가 사람이었으면 인기가 많았을 거예요. 매너가 좋거든요. 멋있는 중년 같기도 하고요.”

요즘은 경계심이 많이 사라져서 사람들을 만나면 엄청 부비적거리는 대오아저씨. 훅끼씨가 ‘대오아저씨~’ 부르면, 저 멀리서 에웅에웅 대답하면서 겅중겅중 뛰어온다. 원래 이렇게 사람을 좋아했나 싶어 훅끼씨는 또 마음이 짠해진다.


대오아저씨를 위한 '러브하우스'

언제부턴가 훅끼씨 본가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대오아저씨를 위해, 작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엔 어머니와 함께 아저씨의 집도 만들어줬다. 모녀가 마주앉아 대오아저씨의 집을 만드는 사진 속에는 대오아저씨에 대한 애정이 살포시 묻어난다.


“엄마가 뽁뽁이(에어캡 비닐)를 엄청 좋아하시거든요. 그런데 큰맘 먹고 양보한다면서, 대오아저씨 집에 바람막이 하는데 쓰시더라고요. 만들면서도 아쉬운지 뽁뽁이를 몇 개씩 터뜨리면서…. 고양이가 좋아하는 캣닢까지 뿌려놓고 기다렸는데, 아저씨가 안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그런데 보자마자 쏙 들어가서 너무 기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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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을 선물받고 흐뭇해 하는 대오아저씨 얼굴이 인상 깊다. (사진 제공: 훅끼)


이제 훅끼씨네 집에서만큼은 경계를 풀고 편히 누워 쉬는 대오아저씨.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몽둥이나 발길질도, 쥐약 넣은 음식도 맞닥뜨릴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듯했다. 홍대 앞 프리마켓 작가로 활동 중인 훅끼씨는 그런 대오아저씨를 그린 수제 노트와 부채를 선보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 잔 더!”를 외치는 귀여운 대오아저씨의 모습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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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홍대 앞 프리마켓에서 인기를 누렸던 길고양이 그림 부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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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가르마, 끝이 휜 꼬리, 코 밑의 애교점 등 대오아저씨 특유의 외모를 그대로 옮긴
'한잔 더!' 노트. 소박하지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제 노트다.
  


이런 대오아저씨의 넉살좋은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며 팬을 자처한 애묘인들도 많다. ‘대오아저씨 알현 번개’를 하자는 사람, 심지어 대오아저씨를 데려가 잘 보살피고 싶다는 사람도 나타날 정도였다. 하지만 훅끼씨는 “대오아저씨는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대오아저씨가 저희 집에서 편히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저씨가 돌아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하니…. 시골이라 트럭이 많이 다니는데, 그것만 조심하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 좋겠어요.”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해야, 뭐가 쓸모 있는지 알게 된다
14년 동안 키운 시추 ‘후키’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닉네임을 정할 만큼 동물을 좋아하는 훅끼씨 역시 수원 작업실에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고 있다. 모두 길고양이 출신이거나, 파양되어 갈 곳 없는 고양이를 거둔 것이다.

“전 주인 집에서 퇴출당한 ‘센’은 그냥 가져가래서 데려왔고, ‘구루구루’는 친구가 신촌에서 주워온 고양이예요. ‘아범’은 좀 어린 친구들이 책임질 수 없다고 분양한 걸 데려왔고, 마지막으로 ‘똥똥네’는 파양되어 갈 곳 없는 애를 탁묘했는데, 정들어서 그냥 키워요.”

업둥 고양이를 들이는 것도 처음 한 마리가 어렵지, 두 마리째부터는 일사천리로 늘어나기 쉬운 모양이다. 작업실 근처에서 배회하는 길고양이 다섯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는 훅끼씨.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해야, 뭐가 쓸모 있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내 소유도 아닌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정을 쏟는 일이 쓸데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버려진 생명과 교감하며 신뢰를 회복해가는 일은, 비정한 세상에서 인간의 따뜻함을 확인시키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 ‘작지만 쓸모 있는 경험’이, 대오아저씨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든든하게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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