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스밀라는 몽유병자처럼 방을 어슬렁거린다. 공기가 싸늘해지면서, 베란다 방의 라탄 둥지보다 내가 있는 쪽으로 건너오는 일이 잦아졌다. 작은 털뭉치 같은 몸이 방 안의 소소한 물건들에 부딪칠 때 나는 소리는 작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척에 귀가 쫑긋해지면서 잠을 깨고 만다. 나도 고양이 귀를 닮아가는 건가.

가끔 내가 잠든 이불 위를 토실토실한 발로 즈려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한 발 한 발 무게를 실어 도장 찍듯이 꾹, 꾹, 꾹, 꾹. 오늘 새벽에는 바로 옆에 와서 냄새를 맡고 있기에, 잠결에 등을 쓰다듬어주니 앞발로 번갈아가며 꾹꾹이를 했다. 꾹꾹, 꾹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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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의 토실토실한 앞발. 요즘 살이 붙어서 그런지, 저 발이 이불 위를 밟고 지나가면 꽤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이불 위를 밟고 지나가면 잠결에도 헉, 놀라 눈을 뜰 만큼 스밀라는 묵직해졌다. 처음 길에서 발견되었을 때는 2.45kg이었는데 석 달 사이에 1kg이 늘었다. 예전에는 밥 먹을 때 뒷모습을 보면 비쩍 마른 어깨뼈가 도드라져서 아프리카 난민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통통한 엉덩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어깨뼈 부근은 얄쌍하지만, 이러다가 ‘사모님’ 소리를 들을 만큼 피둥피둥 살찌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코트도 약간 ‘사모님 삘’이 나지 않나 말이다-_- 아직은 두 살배기 고양이의 평균 몸무게인 것 같지만, 방이 좁아 운동 부족이라 살이 찌는 건 아닐까 슬며시 걱정도 된다. 


이불 근처를 탐색하던 스밀라는 거실로 통하는 문에 등을 기대고 모로 눕는다. 고양이는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과 시원한 곳을 찾는 능력이 있다는데, 저기가 내 방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일까, 아니면 시멘트벽보다 나무 문짝에 등을 기대는 게 따뜻해서일까. 그런데, 저기 있으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거실에서도 잘 들릴 텐데. 비몽사몽간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밀라가 냥, 하고 울면 얼른 끌어다가 문과 떨어진 자리에 앉히고, 다시 눕고…이러면서 새벽에 몇 번씩 잠을 깬다. 물론 고양이는 인형이 아니니까 옮겨 앉힌다고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을 것도 아니지만, 등을 토닥토닥 하면서 쓰다듬으면 울지 않기 때문에, 졸면서 등을 쓰다듬어준다.


관찰자로서 길고양이를 지켜보는 것과,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맞아들여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함께 살지 않는 길고양이가 내게 ‘매력적인 애인’이라면, 반려동물로서의 고양이는 ‘미운 짓도 곧잘 하고 종종 사고도 치는 가족’ 같다. 새벽에 스밀라가 방을 배회하면서 울 때, 다른 가족의 날선 반응에 대응해야 하는 나로서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녀석이 난감하고 얄미워질 때가 있다(자기는 낮에 실컷 잤다 이거지-_-+).

 

지금 내 입장은 집주인 몰래 고양이를 키우는 세입자 정도? 길고양이 커뮤니티에 가면 세입자가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집주인 때문에 겪는 고초를 토로한 글이 종종 올라오는데,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스밀라와 내가 공유하는 공간이 지금보다 넓어지고, 고양이에게 거부감을 갖는 가족이 없다면 조금은 마음 편히 지내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으려면 적지 않은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당분간 고양이 문제로 큰 마찰 없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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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발에 털이 무성하게 자란 스밀라...가 아니고 사실은 꼬리인데 팔처럼 나왔네.


주변에서 고양이가 버려지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가족이 반대해서, 고양이털 알러지가 있어서, 아기가 태어나서, 아파트로 이사해서…. 이 중에는 예측할 수 있는 문제도 있지만, 고양이와 살면서 뒤늦게 불거지는 문제도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 그런 문제를 감수하는데 동의하고 고양이를 데려와야만 버려지는 고양이들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행한 고양이가 넘쳐나는 세상인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양이를 데려왔다가 나 때문에 불행한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추가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러니 고양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할 때까지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유보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스밀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마음속으로 정한 그 원칙에 따랐다면, 파양되어 갈 곳 없는 고양이를 임시로 돌보더라도 새 집을 찾아 떠날 때까지만 곁에 두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원칙’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이유는 내게로 온 고양이가 스밀라였기 때문이다. 다른 성격을 가진 고양이였다면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


스밀라는 첫인상이 독특한 고양이였다. 노숙생활에 찌든 때인지, 원래부터 그런 건지 알 수 없는, 털끝만 회색으로 물든 묘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사람 손에 붙잡힌 고양이 특유의 앙칼짐도 없이 침울했고, 어두운 구석으로만 파고들었다. 그때도 초록빛 눈동자는 아름다웠지만, 결막염에 걸려 눈곱 범벅이 된 눈꺼풀이 그 빛을 덮고 있었다. 게다가 무슨 일을 겪다가 그랬는지 몰라도 송곳니 한 개가 빠져버리고 없었다. 하여간, 아름답지만 어딘가 결핍된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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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하는 스밀라. 왼쪽 큰 송곳니 하나가 없다. 결막염 약을 먹다가 쓴 맛을 본 기억 때문인지 입 벌리는 걸 싫어해서, 평소에는 입 속을 구경하기 힘들다.

아름답기만 한 대상은 나를 잠시 경탄하게 만들 뿐이지만, 어떤 종류의 결핍을 보여주는 대상은 내 마음을 꾹 누르고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짓눌린 마음에서 쓴 즙처럼 새어나오는 감정은 연민이라 부를 수도 없고, 공감이라고도 말하기 힘들다.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거나. 스밀라는 작고 여린 고양이였지만, 보이지 않는 억센 힘으로 나를 붙들었다. 돌보는 동안 정이 들어 스밀라와 살기로 결심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스밀라가 나를 선택한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어쨌든 내가 선택했거나, 선택당했거나에 관계없이 새 식구를 집으로 들였을 때 져야 할 책임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스밀라가, 그 책임의 무게에 준하는 기쁨을 주고 있다고는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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