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살다보면 집에 있을 때도 수시로 사진을 찍게 됩니다. 필름값 안 든다고 막샷을 날리다보면, 나중엔 '이런 사진은 왜 찍었나'싶은 사진도 많이 찍힙니다. 막샷으로 100장 찍으면 서너 장만 마음에 든달까요. 사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B컷 사진들은 분류해서 찍는 즉시 버리고, A컷 사진들만 남겨놓는 것이 좋다는데, 그래서 저 역시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러다보니 2년 전쯤 스밀라가 저희 집에 처음 왔을 무렵의 사진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네요. 상태가 별로다 싶은 사진들은 가차없이 버렸거든요.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후회가 됩니다. 스밀라의 '처음 무렵'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 별로 없거든요. 분류하는 게 귀찮아서 폴더에 남겨둔 바람에 운좋게 살아남은 사진 아니면, 블로그용으로 리사이즈해서 인화도 할 수 없는 손바닥만 한 파일밖에는 없어요.
그동안 찍은 사진을 쟁여둔 하드가 많이 차서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스밀라의 사진을 봤어요. 바로 정리했어야 하는데, 저의 게으름 덕에 요행히 살아남은 사진들이지요. 처음 발견되었을 때 닷새 가량 못먹고 거리를 배회했던지라 비쩍 마르고 털도 푸석푸석 짧아서 볼품없던 스밀라의 모습이 남아있어요. 요즘 스밀라의 모습과 비교해보니 안쓰럽지만, 통통해진 지금과는 또 다른 면에서 사랑스러워요. 어려운 시간을 지나, 2년 동안 우리가 잘 지내 왔구나, 하는 뿌듯함^^
물론 사진 상태가 좋지는 않습니다. 1미터 높이의 3단 책꽂이 위에 폴짝 올라간 스밀라가 신기해서 카메라를 이것저것 조정할 것 없이 막 찍었거든요. 배경도 삭막하고, 화이트밸런스도 안 맞아서 푸르딩딩하고 역광 사진을 억지로 밝게 한 거라 노이즈 만발이고...그래도 이 사진이 소중한 건,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스밀라의 옛날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간에 비교하면, 고양이의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마치 속도가 다른 무빙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것 같아요.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인간을 앞질러 먼저 가버리지요. 발견 당시 추정된 나이가 2살이었으니, 스밀라는 이제 4살쯤 되었겠네요. 고양이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함께 살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 많이 사랑하고,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싶습니다. 스밀라를 영원히 곁에 둘 수는 없겠지만, 사진은 남아 스밀라를 추억하게 해줄 테니까요. 당장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라도, 멋진 배경을 뒤로 하고 찍은 게 아니어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소중한 사진이 될 수도 있어요. 시간이 소중함을 만들어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보기엔 B컷 사진이라도 당장 버리지는 마세요. 적어도 소중한 무언가를 찍은 사진이라면요. 그 대상은 꼭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겠지요?
2년 전 스밀라 사진. 오래된 폴더를 뒤지다가 발견했어요. 사진 상태는 나쁘지만, 지금 보니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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