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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스밀라는 햇님고양이

by 야옹서가 2008. 9. 7.
 

아침이면, 내 방에는 두 개의 해가 뜬다. 하나는 네모난 모양이고, 하나는 동그랗다.
네모난 해가 내뿜는 빛은 눈부시고 날카롭지만, 동그란 해는 내 얼굴에 반사된 빛을 부드럽게 빨아들인다.
하얗고 동그란 햇님이 반쯤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관심없다는 듯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널 본 게 아니었다고,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이라고 둘러대는 것처럼.
하지만 스밀라가 아무리 딴청을 부려도, 난 진실을 알고 있다.
내가 잠이 깰 때까지, 스밀라가 종종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새벽잠이 없는 스밀라는 오전 4시가 되면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거실을 걸어다닌다.
밥그릇에 사료가 충분한데도, 시위하듯 그 앞에 앉아 앵앵 운다.
사료를 병아리 오줌만큼 집어다가 새로 주는 시늉을 하면, 그제서야 깨작깨작 먹기 시작한다.
물론 자기 전에 사료를 잔뜩 부어놓고 자면, 스밀라도 머쓱해서 밥그릇 앞의 시위를 그만둘 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 어쩐지 정이 없게 느껴지는 거다. 게다가 사료를 많이 부어두면 침도 묻고 눅눅해질 테니까.
내가 눅눅한 과자를 먹기 싫은 것처럼, 스밀라도 바삭바삭한 새 밥을 먹고 싶은 게 아닐까.

밥을 먹고 난 스밀라는 하릴없이 거실을 배회하다가, 잠을 못이겨 다시 누운 나를 찾아서 방으로 들어온다.
아침에 눈을 떠서 보면, 저렇게 의자 위에 누워 얼굴만 내민 자세로 누워 있다. 전망대에 온 체셔고양이처럼.
그 위에서 얼마동안이나 나를 보고 있었을까,
혼자만의 착각일수도, 스밀라는 그저 생각없이 거기 있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실은 듀오백 의자가 스크래치를 하기 좋으니까 거기 있었을 확률이 높지만,
내가 눈을 뜰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는 고양이를 생각하면, 애틋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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