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엔 잘 몰랐다. 고양이에게도 코딱지가 있다는 걸. 스밀라를 안고 둥개둥개 어르면서 얼굴을 들여다보면, 가끔 콧구멍에 코딱지가 붙어있는 게 보인다. 고양이세수를 해도 거기까진 잘 닦이지 않아서 그럴까. 투명했던 콧물은 어떻게 까만색으로 변하는 걸까. 흰 털옷을 입은 고양이라 그런지, 코딱지가 더 도드라진다. 하지만 더럽다는 느낌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한 아기 같아서. 살아있는 생명이니까, 가짜가 아니니까, 코딱지도 생기고 눈곱도 끼는 거다.
스밀라를 데려오기 전에, 고양이는 키우고 싶은데 상황은 안 되니 장난감 박람회에서 본 고양이 로봇이라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도저히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양이 로봇이 진짜 고양이를 대체할 순 없었다. 고양이의 행동이나 감정 표현을 흉내 낼 줄은 알았지만, 동물이라면 당연히 지녔을 예측불허의 면모가 로봇에겐 없었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보살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 로봇을 사 간다면 매일 연극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결국 고양이 로봇 입양은 포기했다.
내게 고양이는 ‘간절히 원하지만 나중으로 미뤄야 하는 어떤 것’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기’라는 꿈은, 스밀라가 내 삶에 등장하면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나중이란 말처럼 덧없는 게 있을까. 그 나중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스밀라와 함께 살면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동안 블로그가 뜸했던 것도 ‘나중에’ 라는 말에 기댔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하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마음은 늘 여유가 없고 쓸데없는 일로 바빴다. 몸이 바쁘지 않을 때도 마음은 혼자 바빴다. 그놈의 마음이 불쌍해서 좀 쉬게 해주고도 싶었지만, 마음은 관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게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건 ‘일이 들어올 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오랫동안 굶주린 탓에 먹이만 발견하면 일단 배터지게 먹고 보는 길고양이처럼. 이게 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무렵의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그보다 빡센 일도 했는데 뭐 이 정도쯤이야,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지가 않았다. 사채만큼 무섭다는 글빚에 시달렸다. 서로 다른 성격의 매체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려 뇌가 지글지글 타는 것 같았다. 다리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몇 개의 퓨즈를 끊어먹고 나서야, 간신히 뇌가 타는 냄새도 사그라들었다. 빚은 지지 말아야지, 그게 글빚이라 해도. 만약 뭔가에 대해 쓰게 된다면, 마음이 가는 일만 신중하게 골라, 즐겁게 매진하기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말보다도 더 익숙한 내겐, 말을 잃는 것보다 글을 잃는 게 더 무섭다. 한데 요즘은 어떤 느낌의 글이 나인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내 블로그인데도 가끔 이곳이 낯설다. 그래서 존댓말을 했다가 반말도 하고, 혼잣말도 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뒤적이면서 무엇이 그때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 되짚는다. 요즘 이 블로그가 정신없어 보이는 건 그런 탓이다. 실어증에 걸렸다가 갑자기 말문이 트여 혼란스러운 사람처럼, 침묵하다가도 격하게 토해내고, 다시 고요해진다. 나에게 맞는 언어를 되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중이 아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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