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09. 2001 |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은 때로 인간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자연의 시련에 맞서면서 서로를 돕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극한 상황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기도 한다. 바다 위에서 선원들이 겪는 고난은 자연재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폭풍이나 표류보다 더 빈번히 목숨을 위협하는 건 선장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폭력이었다.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 인간과 인간의 갈등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세바스찬 융거의 실화소설 《퍼펙트 스톰》(박지숙 옮김, 승산)은 1991년 10월 허리케인 ‘그레이스’에 의해 조난당한 황새치잡이 어선 안드레아 게일 호의 이야기를 그렸다. 폭풍 전의 고요라는 말처럼, 처음엔 날씨는 흐렸어도 바다는 잔잔했다. 뱃사람들에겐 자신의 배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든 무사할 거라는 기묘한 자신감이 있어서 안드레아 게일 호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를 계속한다. 하지만 서서히 역풍이 불어온다. 이 역풍은 저기압이 격렬한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하는 최초의 징후다.
기상학적으로 더 이상 나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퍼펙트 스톰’이라고 불린 광폭한 바람은 먼저 그 소리만으로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다. 12단계가 그 한계인 보퍼트 풍력계가 11단계에 이르면 바람소리는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넘어 거의 울부짖는 소리로 들린다. 배가 45도 각도로 파도를 타다가 물마루까지 닿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면 고물이 파도의 골에 묻히고, 그 순간 물마루가 이물을 덮쳐 배를 뒤집는다. 30m를 넘는 파도가 눈앞에서 융단폭격처럼 배를 덮칠 때 바다는 푸른빛이 아닌 죽음의 검은빛을 띤다. 배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제로의 순간’에 놓인다. 안드레아 게일 호의 선원 6명은 폐 속에 남은 1∼2분 분량의 산소로 최후의 숨을 내쉬고 죽음을 맞는다. 익사자의 두 부류-후두경련증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질식사하거나, 혹은 허파에 물이 들어차면서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것이다.
한계상황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지만 폭풍 속에서 안드레아 게일 호가 겪은 고난은 나다니엘 필브릭의 소설 《바다 한가운데서》(한영탁 옮김, 중심)에 묘사된 에식스 호의 비참함에 비할 수 없다. 죽는 순간의 고통은 괴롭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식스 호의 선원 20명은 조난을 당한 그 순간부터 죽음보다 더한 삶과의 투쟁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들은 갈증과 배고픔이란 육체적 고통에다 인간에 대한 믿음까지 시험받는 한계상황에 놓여있었다.
향유고래잡이로 유명한 미국의 퀘이커교도 마을 낸터컷, 이 곳에서 가장 실적 좋은 배로 꼽혔던 포경선 에식스 호는 1820년 11월 20일 경,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다. 인근 소시에테 제도 원주민이 식인종일 거란 생각을 갖고 있던 에식스 호 선원들은 가까운 섬으로 가는 대신 남아메리카 해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지만, 이 치명적 오판 때문에 그들은 바다 위의 생지옥에서 석 달 가까이 떠돌며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일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가 남긴 기록은 훗날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의 모티브가 됐다.
고래잡이 보트 세 척에 나눠 탄 선원들이 허기와 갈증 때문에 서서히 변해 가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물이 부족해 갓 잡은 거북의 피나 자신의 오줌을 받아마시는 사람, 갈증이 더 심해질 것을 알면서도 바닷물을 입에 머금는 사람도 있다. 점점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되어가다 나중에는 온몸에 종기가 돋고, 오랜 굶주림으로 아프리카 난민들처럼 팔다리가 감당할 수 없이 부어오른다.
구조될 희망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굶주림에 지쳐 하나 둘 죽어갈 때쯤 살아남은 이들은 먼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나눠 먹는다. 식인 원주민을 두려워해 먼길을 택했던 그들이 제비뽑기를 해 동료를 잡아먹고 뼈를 꺾어 골수를 빨아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특히 20명의 표류자 중에서 6명이었던 흑인선원 중 병들어 죽은 한 명을 제외한 흑인 4명이 가장 먼저 생존자들의 ‘먹이’가 됐다는 사실, 그리고 순수 낸터컷 출신 백인, 외지 출신의 백인, 흑인 순으로 나눠지는 선원들의 지위 등은 인종차별적 경향과 타지역 출신에 배타적이었던 19세기 초반의 사회상을 짐작하게 한다.
앞에서 언급된 재난이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 초점을 맞췄다면, 18세기 초반 미국과 영국의 바다 생활을 다룬 마커스 레디커의 해양연구서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박연 옮김, 까치)는 바다 위를 떠도는 인간과 인간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자연재해보다 더 직접적으로 선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선장의 폭압이었다. 선장은 공공연하게 선원을 학대하거나 무인도에 버려놓을 수도, 심지어 때려죽일 수도 있었다.
이같은 폭력 행사는 기강확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종종 자행됐는데, 이는 돈 있는 자가 힘을 갖는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선장들의 폭력에 맞서 선상반란이 일어났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해적들이 자본주의를 대신하는 대안세력을 자처하며‘악마’같은 악덕 선장을 처단했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해적들 대부분이 선원생활을 경험했던 노동자였고, 그들 안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점에서 18세기의 해적들은 당시 배에 올랐던 하류층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
세바스찬 융거의 실화소설 《퍼펙트 스톰》(박지숙 옮김, 승산)은 1991년 10월 허리케인 ‘그레이스’에 의해 조난당한 황새치잡이 어선 안드레아 게일 호의 이야기를 그렸다. 폭풍 전의 고요라는 말처럼, 처음엔 날씨는 흐렸어도 바다는 잔잔했다. 뱃사람들에겐 자신의 배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든 무사할 거라는 기묘한 자신감이 있어서 안드레아 게일 호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를 계속한다. 하지만 서서히 역풍이 불어온다. 이 역풍은 저기압이 격렬한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하는 최초의 징후다.
기상학적으로 더 이상 나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퍼펙트 스톰’이라고 불린 광폭한 바람은 먼저 그 소리만으로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다. 12단계가 그 한계인 보퍼트 풍력계가 11단계에 이르면 바람소리는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넘어 거의 울부짖는 소리로 들린다. 배가 45도 각도로 파도를 타다가 물마루까지 닿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면 고물이 파도의 골에 묻히고, 그 순간 물마루가 이물을 덮쳐 배를 뒤집는다. 30m를 넘는 파도가 눈앞에서 융단폭격처럼 배를 덮칠 때 바다는 푸른빛이 아닌 죽음의 검은빛을 띤다. 배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제로의 순간’에 놓인다. 안드레아 게일 호의 선원 6명은 폐 속에 남은 1∼2분 분량의 산소로 최후의 숨을 내쉬고 죽음을 맞는다. 익사자의 두 부류-후두경련증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질식사하거나, 혹은 허파에 물이 들어차면서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것이다.
한계상황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지만 폭풍 속에서 안드레아 게일 호가 겪은 고난은 나다니엘 필브릭의 소설 《바다 한가운데서》(한영탁 옮김, 중심)에 묘사된 에식스 호의 비참함에 비할 수 없다. 죽는 순간의 고통은 괴롭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식스 호의 선원 20명은 조난을 당한 그 순간부터 죽음보다 더한 삶과의 투쟁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들은 갈증과 배고픔이란 육체적 고통에다 인간에 대한 믿음까지 시험받는 한계상황에 놓여있었다.
향유고래잡이로 유명한 미국의 퀘이커교도 마을 낸터컷, 이 곳에서 가장 실적 좋은 배로 꼽혔던 포경선 에식스 호는 1820년 11월 20일 경,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다. 인근 소시에테 제도 원주민이 식인종일 거란 생각을 갖고 있던 에식스 호 선원들은 가까운 섬으로 가는 대신 남아메리카 해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지만, 이 치명적 오판 때문에 그들은 바다 위의 생지옥에서 석 달 가까이 떠돌며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일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가 남긴 기록은 훗날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의 모티브가 됐다.
고래잡이 보트 세 척에 나눠 탄 선원들이 허기와 갈증 때문에 서서히 변해 가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물이 부족해 갓 잡은 거북의 피나 자신의 오줌을 받아마시는 사람, 갈증이 더 심해질 것을 알면서도 바닷물을 입에 머금는 사람도 있다. 점점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되어가다 나중에는 온몸에 종기가 돋고, 오랜 굶주림으로 아프리카 난민들처럼 팔다리가 감당할 수 없이 부어오른다.
구조될 희망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굶주림에 지쳐 하나 둘 죽어갈 때쯤 살아남은 이들은 먼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나눠 먹는다. 식인 원주민을 두려워해 먼길을 택했던 그들이 제비뽑기를 해 동료를 잡아먹고 뼈를 꺾어 골수를 빨아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특히 20명의 표류자 중에서 6명이었던 흑인선원 중 병들어 죽은 한 명을 제외한 흑인 4명이 가장 먼저 생존자들의 ‘먹이’가 됐다는 사실, 그리고 순수 낸터컷 출신 백인, 외지 출신의 백인, 흑인 순으로 나눠지는 선원들의 지위 등은 인종차별적 경향과 타지역 출신에 배타적이었던 19세기 초반의 사회상을 짐작하게 한다.
앞에서 언급된 재난이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 초점을 맞췄다면, 18세기 초반 미국과 영국의 바다 생활을 다룬 마커스 레디커의 해양연구서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박연 옮김, 까치)는 바다 위를 떠도는 인간과 인간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자연재해보다 더 직접적으로 선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선장의 폭압이었다. 선장은 공공연하게 선원을 학대하거나 무인도에 버려놓을 수도, 심지어 때려죽일 수도 있었다.
이같은 폭력 행사는 기강확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종종 자행됐는데, 이는 돈 있는 자가 힘을 갖는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선장들의 폭력에 맞서 선상반란이 일어났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해적들이 자본주의를 대신하는 대안세력을 자처하며‘악마’같은 악덕 선장을 처단했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해적들 대부분이 선원생활을 경험했던 노동자였고, 그들 안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점에서 18세기의 해적들은 당시 배에 올랐던 하류층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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