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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드니즈 르네가 엄선한 현대추상미술의 역사

by 야옹서가 2001. 7. 12.

Jul. 12. 2001
| 프랑스의 '문화권력'으로까지 불리는 화상(畵商) 드니즈 르네(88)가 지난 60여년 간 수집해온 현대 추상미술작품을 국내에 선보인다. 8월 15일까지 열릴 ‘20세기 추상미술의 빛과 움직임’전에는 드니즈 르네의 예술적 동반자로서 영감을 제공했던 빅토르 바자렐리를 비롯해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알렉산더 칼더, 장 탱글리, 폴 뷰리, 옵 아트의 거장 라파엘 소토, 신조형주의의 주창자 피엣 몬드리안, 미니멀 아트의 엘스워스 켈리, 도널드 저드, 로버트 인디애나 등 50여 명의 대표작 80여 점이 전시된다.

1944년 파리에 문을 연 드니즈 르네 화랑은 1955년 키네틱 아트를 처음 선보인 ‘움직임’전을 열면서 세계 미술계에 부각됐다. 빅토르 바자렐리의 기획으로 이뤄진 이 전시는 캔버스 그림의 종말을 알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뒤이어 1965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반응하는 눈’전은 비평가 로렌스 알로웨이가 명명한 ‘옵 아트’개념을 등장시켰고 1967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빛과 움직임’전은 빛·소리·움직임을 주 요소로 하는 키네틱 아트의 정점을 보여줬다. 르네는 키네틱 아트와 옵 아트의 발굴 외에도 프랑스에서 최초로 몬드리안의 작품 전시를 기획했고, 미술에 복수 개념을 도입한 다중작품의 제작을 독려해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원본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르네는 안목있는 화상이었을 뿐 아니라 작가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르네는 출판물의 선인세 개념과 비슷하게 자신의 화랑과 계약한 작가들이 작품 제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매월 보조금을 지불하는 작품 가격 선불제를 1960년 처음으로 도입했다. 1993년에는 독일 크레펠트와 뒤셀도르프, 미국 뉴욕 등지에 화랑 분점을 내며 현대추상미술의 산파 역할을 맡은 그녀의 공로를 기려 프랑스 정부가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그녀의 이름은 미술사전의 표제어로도 등재됐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재능있는 예술가를 발굴·육성하는데 모든 삶을 보낸 드니즈 르네는 ‘현대미술과 결혼한 여성’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기하학적 현대 추상미술의 진수
1967년의 기념비적 전시 ‘빛과 움직임’의 이름을 딴 이번 전시에서는 칼더의 모빌이 보여주는 자연적인 움직임, 소토의 중첩된 줄무늬를 통해 나타나는 착시현상, 모터로 작동되는 탱글리의 기계적 움직임 등 키네틱 아트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아감, 에르뱅, 폴리아코프, 모렐레 등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도 합리적인 형식의 예술을 선호했던 드니즈 르네의 기호에 따라 기하학적 추상작품이 컬렉션의 주류를 이룬다. 특히 조선일보 미술관에 전시된 몬드리안의 작품들은 초창기의 나무 그림에 등장하는 수직과 수평의 관계가 추상화 단계를 거쳐 전성기의 절제된 컴포지션 연작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비교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다.

이번 전시는 2002년 2월까지 일정이 잡힌 세계순회전이다. 이미 일본의 4개 미술관과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전시를 치렀으며, 한국 전시가 끝나면 스페인 라스팔마스 미술관을 거쳐 2002년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한국전에서는 전시 오픈에 맞춰 드니즈 르네의 성장배경, 작가 발굴 과정, 화랑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대담집 《드니즈 르네와의 대화》(김효선 옮김, 시공사)가 출간됐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분산 전시되며, 관람객을 위한 부대행사로 7월 13일 오후 2시에 화랑과 현대미술을 주제로 아트스페이스서울 이주헌 관장의 강연회가 열린다. 관람료 성인 5천원, 학생 3천원. 문의전화 02-73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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