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0. 2001 | 미술계에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노성두씨가 고대와 중세시대의 서양미술작품 31점을 독특한 관점으로 해석한 《유혹하는 모나리자》(한길아트)를 펴냈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카라바조의 ‘마태오 간택’, 뒤러의 ‘멜렌콜리아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작품 15점과 라오콘 군상, 카라칼라 대욕장, 판테온, 티투스 개선문, 콜로세움, 아우구스투스 초상조각 등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작품 16점을 각각 1, 2부로 나눠 소개했다.
노성두씨는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꼭 공식적으로 인정된 정사(正史)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신화를 공부하면서 호메로스만 읽고 플루타르코스는 읽지 않겠다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도상학과 미술사 등을 바탕으로 한 정통적 해석과 함께 당시의 시대적 정황과 관련된 야사를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노성두씨의 독특한 글쓰기는 이같은 생각에 기인한다. 그에게 있어 가장 올바른 그림의 해석은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문건을 다 뒤져서라도 작품 제작 당시의 정황을 되살리는 일이다.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로 풀어낸 서양미술작품의 의미
예를 들어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그림을 설명할 때 노성두씨는 정경인 루가복음 외에 야고보 외경의 이야기를 곁들인다.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계시에 다소곳이 순종하는 성처녀로 그려졌던 마리아는 야고보 외경에서 “나한테 임신을 시킨다는데, 그러면 하느님이 나하고 동침하는 건가요?”라며 당혹감과 불편한 심경을 표현하는 순박한 시골처녀로 되살아난다. 목욕하는 아프로디테를 훔쳐본 판이 신발짝으로 뺨을 얻어맞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상 ‘아프로디테와 판’에서 미추의 극단적 대비로 극적 효과를 노린 헬레니즘 양식을 설명하고, 뮌헨 고전조각미술관에 소장된 ‘주정뱅이 노파’의 자태를 보고는 퇴물 창녀로 추측해 나가는 그의 글은 짧은 추리소설을 방불케 할 만큼 흥미진진하다.
맛깔스런 글과 더불어 이 책을 더욱 매력 있게 하는 부분은 적절하게 편집된 도판이다. 원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참고도판을 함께 보여주면서 그림 속 모티브들이 이전 시대의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달해야 할 때는 양 페이지에 꽉 차게 도판을 실었고, 자세히 설명해야 할 부분은 크게 확대해 줌렌즈로 끌어당긴 듯한 느낌을 줬다. 예컨대 보티첼리의 그림 중 가장 해석하기 어렵다는 ‘프리마베라’도 확대된 도판과 함께 노성두씨의 설명을 듣다보면 메디치 가문의 정략결혼을 상징하는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허리를 잡아채는 제피로스의 손길에 놀란 님프 클로리스의 입에서 떨어지는 장미꽃과 제피로스의 입에서 뿜어나오는 거친 숨결은 어린 신부를 강탈하듯 데려왔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회화작품과 달리 사방에서 감상해야만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조각작품은 정면뿐 아니라 측면 또는 후면에서 본 모습도 함께 실어 그 생생함을 더한다. 이상화된 육체의 균제미를 보여주는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내’, 신이 보낸 바다뱀에 물려 두 아들과 함께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라오콘’등은 기존 미술서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각도의 사진을 보여준다. 탄탄한 미술사적 지식을 기반으로 각종 야사와 역사적 배경 설명을 곁들인 그의 글을 읽다보면, 침묵 속에 묻혀 있던 고대 조각과 중세 회화의 등장인물들이 먼지를 툭툭 털고 눈앞으로 걸어나오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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