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4. 2001 | 과거에는 기부행위가 일부 부유층에만 한정되고 그 방식도 주로 금전적 지원에 그쳤던 데 비해 최근에는 기부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무주택 영세민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 남는 먹거리를 결식계층에 전달하는 푸드뱅크 운동, 기부행위를 문화운동으로 정착시킨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1퍼센트 나눔 운동’ 등이 그 예다. 출판계에서도 글쓴이나 출판사가 수익금 일부를 기부금으로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랑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해비타트’와 ‘푸드뱅크’ 운동
해비타트 운동의 창시자 밀러드 풀러가 쓴 《망치의 신학― 사랑의 집짓기 운동, 해비타트》(김훈 옮김, 북하우스)를 보면 새로운 기부문화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무주택 상태를 추방하기 위해 1976년 미국에서 시작된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운동으로 2001년 현재 세계 79개국의 11만 5천여 세대가 집을 갖게 됐다. 해비타트 운동의 별칭인 ‘망치의 신학’은 2천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 썼던 망치가 오늘날에는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하고 사람들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도구가 됐음을 의미한다. 해비타트 주택의 입주자는 무조건적인 원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집을 짓는 건축현장에 5백 시간 이상 참여하고, 장기 무이자 조건으로 최소한의 건축비를 갚아나가야 한다. 노동을 통해 자립의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건축자금을 기부할 수도 있고, 건축현장에서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한편, 푸드뱅크(Food Bank)는 식품의 생산과 유통, 소비 단계에서 남는 먹거리를 제공받아 결식계층을 돕는 운동이다. 1967년 미국에서 ‘제 2의 수확’(Second Harvest)이란 이름으로 시작됐으며, 국내에서는 1998년 민간단체로는 최초로 성공회에서 푸드뱅크 운동을 시작했다. 성공회 푸드뱅크에서는 2000년 6월부터 격월간 소식지 《노느매기》를 발간하고 있는데, ‘물건을 여러 몫으로 나누는 일’을 뜻하는 순 우리말 노느매기는 건강한 나눔의 정신을 표현한다. 《노느매기》제7호에 실린 성공회 푸드뱅크 김현주 전문위원의 글처럼 ‘한끼의 식사가 살아남기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관한 것’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푸드뱅크의 정신은 유용하다. 봉사자와 소외계층 사람들이 음식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정담은 육체적 허기뿐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도 채워주기 때문이다. 음식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푸드뱅크 운동의 부차적인 효과일 뿐이다.
작아서 더 아름다운 ‘소액 기부, 다수 참여’의 기부문화
이외에도 순수하게 한국에서 시작된 기부운동 중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1퍼센트 나눔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기여할 수 있는 1퍼센트를 나누도록 해 기부행위를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정착시켰다. 이 1퍼센트는 유산·월급·매출 등 금전적인 부분부터 끼·전문성 등 무형의 자산도 해당돼 흥미롭다. 예를 들어 박경림·박진희·이의정·박시은 등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 출신 연예인들은 연예활동 수입 중 1퍼센트를 기부하는 ‘끼 1퍼센트 기부운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출판계의 경우를 보면,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이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기행― 가와리모노를 찾아서》(아르케)의 인세 1퍼센트를 기부한 것을 계기로 아르케출판사 측도 자사 도서판매 이익금의 1퍼센트를 지속적으로 기부키로 했고, 월간 《작은이야기》에서는 매달 지면 1퍼센트를 재단 측에 기부해 ‘나눔의 글 잇기’를 실천중이다. 이밖에도 아름다운재단 측과 연계하지는 않았지만 ‘주대관 문교기금회’가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김태연, 송현아 옮김, 파랑새어린이) 한국어판 인세의 20퍼센트를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내놓은 경우나, 문학수첩에서 《퀴디치의 역사》(최인자 옮김, 문학수첩)와 《신비한 동물 사전》(최인자 옮김, 문학수첩)의 책값 30퍼센트를 영국 자선단체 ‘코믹 릴리프’에 기부하기로 한 것도 작지만 뜻깊은 나눔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눔의 방식이 이처럼 다양해진 요즘이라면, 경제적이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뒤로 미루기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의 삶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거창한 기부행위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이 글 속에 소개된 책을 한 권 사 읽는 것만으로도 ‘소액 기부, 다수 참여’의 기부문화에 동참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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