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09. 2001 | 관훈미술관에서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장서표전은 그동안 국내에서 산발적으로 열렸던 장서표 전시회의 성과를 집대성한 기획전이다. 장서표는 책 소유자의 표시를 위해 책의 내지 겉장에 붙이는 작은 그림인데, 최근에는 기능적 측면뿐 아니라 독특한 조형성이 부각되면서 소형 판화의 새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김상구, 이인화, 송대섭, 김준권, 남궁산, 정비파, 김정영 등 현역 판화작가 1백30여 명의 작품 5백여 점이 출품됐으며, 1993년에 열린 ‘세계의 장서표’전 도록을 비롯해 국내 판화 작가들이 소장한 외국 장서표 등 관련자료도 함께 전시됐다.
단순히 책에 대한 소유를 표시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장서표를 만드는 일은 번거롭거나 생경한 절차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반영한 장서표를 만들어 책 속에 남기는 것은 단순히 책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장서표는 책의 임자가 자신의 책에 부여하는 친밀함과 애정의 표시이면서, 개성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한 ‘애서가의 초상화’라 부를 만하다.
글자 위주의 장서인(藏書印)과 달리 장서표(藏書標)는 의뢰자인 표주(票主)와 관련된 상징적인 그림이 덧붙여져 흥미롭다. 15세기 중엽부터 독일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장서표는 복수로 제작해야 하는 특성상 주로 판화로 제작되는데, ‘∼장서, ∼애서’의 뜻을 지닌 ‘EXLIBRIS’ 혹은 ‘EX-LIBRIS’란 국제 공용의 표식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일반 판화와 다르다. 표주의 이름이 명기되는 점도 장서표의 특징이다.
목판, 동판, 컴퓨터 프린팅까지 다양한 기법 선보여
이번 전시에서는 거칠고 힘있는 칼맛을 느낄 수 있는 목판,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가 가능한 메조틴트 등 전통적인 판화기법으로 제작된 장서표는 물론, 독특한 기법을 쓴 작품들도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어 이순희씨의 장서표는 흰색 판화지에 꽃 문양을 엠보싱 처리해 올록볼록한 입체감만으로 꽃가루가 흩날리는 만발한 꽃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또 김태철씨의 경우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 제작한 다른 장서표와 달리 임의로 선택한 전통문양과 ‘EX-LIBRIS’란 단어, 자신의 이름을 배열하고 컴퓨터로 출력해 확장된 판화개념을 보여줬다. 또한 전시된 작품의 형태 면에서 보면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등의 기본적인 형태 외에도 원형이나 삼각형, 창문 모양의 변형된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형식의 작품이 전시돼 다양한 장서표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전시의 진행을 맡은 판화 포탈사이트 ‘판화넷’의 김정영씨는 “일반인들 뿐 아니라 판화작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장서표의 개념이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까닭에, 전시된 작품 중에는 소형 판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장서표와 거리가 먼 작품도 일부 포함됐다”며 아쉬움을 표명했다. 또한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장서표협회를 출범하고, 내년부터 출판 관계자와 연계해 장서표전을 연례행사로 정착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판화넷’에서는 장서표 제작 주문도 받고 있어 개인적으로 장서표를 소장하거나 선물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듯하다. 문의 02-335-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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