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03. 2001 | 로댕갤러리는 7월 13일부터 9월 2일까지 중국 출신 재불 조각가 왕두(45)의 ‘일회용 현실’전을 개최한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2000년 타이페이 비엔날레 등 국제전시에서 제3세계 미술의 대표주자로 주목받는 왕두는 이번 전시에서 신문, 잡지 등의 사진 속에서 무작위로 뽑은 이미지를 석고 조각으로 형상화한 작품 15점을 전시한다. 실물보다 훨씬 큰 크기로 제작된 사실적 형태의 육중한 조각들을 와이어로 공중에 매달아 놓은 모습은 달리의 초현실적인 작품을 연상시킨다.
무겁고 심각한 현실, 경쾌한 광고 속 현실이 한 자리에
왕두는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체포돼 9개월 간의 투옥생활을 마치고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2차원적 미디어 이미지를 조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작품의 소재는 신문 사회면의 기사에서 소비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광고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각각의 작품들은 역동적인 구도로 포착된 사진 속 이미지를 빼닮았다.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제한 여성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권투장갑을 낀 도전적인 자세를 취한 ‘나디아(여자 권투선수)’, 피를 흘리며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의 시위 참가자와 진압경찰의 모습을 묘사한 ‘인도네시아 시위자’, 어린아이도 총기 사용법을 배워야 할만큼 심각한 미국 내 폭력 문제를 그린 ‘아이들의 게임’ 등 쉽게 잊히는 뉴스 속 사건을 기념비적인 형상으로 되살려낸다.
이처럼 시사적인 작품은 경쾌하고 자극적인 광고 이미지를 묘사한 작품과 대조를 이룬다. 아슬아슬한 속옷만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금발 여성을 묘사한 ‘사이버 섹스’,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걸어가는 소녀의 구두를 클로즈업해 엄청난 크기로 과장한 ‘부기 신발’, 우주로켓으로 변신한 거대한 핸드폰이 하늘을 나는 ‘핸드폰’ 등은 소비미학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프로파간다적 성향을 띤 거대조각
왕두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조각이라는 영구적인 형태로 변환시켜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미디어 속에 비친 현실은 다음날이면 또다른 정보로 대체된다는 점에서 마치 일회용품처럼 쉽게 접하고 쉽게 잊게 되기 마련이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잡지와 신문기사를 전시장 바닥에 흩뿌려 관람객들이 밟고 다니게 한 설정이나, 조각의 재료로 값싸고 파괴되기 쉬운 석고를 쓴 점에서 ‘일회용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왕두의 말은 그의 작품세계를 요약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망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틀을 다시 한 번 보여주면서 우리 모두가 놓여 있는 현실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제 작업에 새로운 창조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프로파간다적인 성격은 있지요. 모든 미디어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지난해 2월부터 4개월 간 프랑스 디종의 현대미술센터 ‘르 콘소시움’에서 호평 속에 전시된 석고 조각 15점을 재구성한 것이다. 영상실에서는 왕두가 찰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석고로 주물을 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상영한다. 관람료는 성인 4천원, 학생 2천 원이며, 왕두 개인전 입장권으로 8월 3일부터 10월 28일까지 열리는 호암갤러리의 ‘분청사기 명품전Ⅱ’도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750-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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