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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해부한 지능의 신비 ― 《타고난 지능, 만들어지는 지능》

by 야옹서가 2001. 9. 24.
Sep. 24. 2001 | 왜 흑인은 백인보다 IQ지수 평균점수가 낮을까? 지능을 결정하는 건 유전적 요인일까, 환경적 요인일까? 영재와 모범생은 어떻게 다를까? 앵무새나 침팬지에겐 지능이 있는 걸까? 외계에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정말 존재할까? 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학술적 분석부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가십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띠지만, 지능의 메카니즘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타고난 지능, 만들어지는 지능》(이한음·표정훈 옮김, 궁리출판)에 실린 12편의 글은 인간, 동물, 기계, 심지어 외계 생물에 이르기까지 지능과 관련한 다양한 논점을 보여준다. 미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특집기사로 12회에 걸쳐 연재된 글을 엮어 펴낸 이 책은 각각의 장이 독립적이어서 관심 있는 부분만 쏙 뽑아 읽어도 무방하다.

유전학적 결정론과 환경결정론의 한판 승부
지능을 결정하는 것이 유전적 요인이냐, 환경적 요인이냐에 대한 논의는 고전에 속한다. 이 두 견해를 사회적인 이슈로 급부상시킨 것은 《벨커브: 미국인의 삶에서 지능과 계급 구조》(1994)와 관련된 논란이다. 《벨커브》는 유전적인 요소가 IQ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지적인 상류계급과 그렇지 못한 하류계급으로 사회가 나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흑인이 백인보다 평균 15점 정도 IQ 점수가 낮은 점을 감안할때, 이들의 주장은 인종차별과 흑백계급화를 정당화하는 논지로 해석할 수 있어 논란을 빚었고, 지능에 미치는 환경적 요인을 도외시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IQ 검사는 지능지수 측정의 대명사지만, 백인문화권에 기반한 평가문항 때문에 백인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이처럼 지능과 관련된 논의는 인종적, 우생학적 쟁점과 밀접하게 관련돼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지능의 척도가 무엇인가에 따라 동일한 사람이 천재로 평가받을 수도, 사회부적응자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영재와 관련된 글 ‘비범한 재능은 어떤 능력을 말하는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영재는 우수한 학업 성취능력을 보이며 뛰어난 사회적응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영재가 아닌 ‘명석한 아이’일 뿐이다. 영재들은 매우 조숙하며, 직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특정한 관심분야에는 미친 듯이 몰두하지만 그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잊어버린다. 한국의 젊은 어머니들이 경쟁하듯 영재교육을 얘기하지만, 그들은 영재와 모범생을 착각하고 있다. 실제로 영재들이 정신적·사회적으로 곤란을 겪을 확률은 평범한 아동보다 두 배로 높다.

그럼에도 똑똑한 자녀, 똑똑한 자신을 꿈꾸는 사람들은 ‘머리를 좋게 하는 약물을 찾아서’에 많은 흥미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식품의약국(FDA)가 승인한 기억력 강화약물은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한 탁린과 도네페질 두 가지 뿐이다. 현재 가장 유망한 인지능력강화물질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지만, 이것 역시 머리를 좋게 하는 약물이기보다 치료적 관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이 글에서 일반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인지능력 강화제는, 약물이 아닌 설탕을 넣은 커피 한잔이나 니코틴 페치 정도다. 머리를 좋게 하는 이른바‘스마트 약물’이 개발된다 해도 그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가도 문제다. 약물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차이가 계급적 차이로 고착화될 우려가 있고, 인간이 기억을 완전히 통제하게 됐을 때 기억의 의미가 현재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의사소통하는 동물, 체스챔피언을 이긴 컴퓨터, 외계생명체까지

이 책은 인간 외에도 동물, 기계, 외계 생물체에 이르기까지 지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앵무새 앨릭스, 침팬지 와스호, 고릴라 코코 등의 이야기는 인간과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동물들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들의 행동이 학습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어능력과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는 좀 더 연구해봐야 할 일이다. 한편 기계와 인간의 멋진 승부를 보여주는 ‘컴퓨터, 게임, 그리고 현실 세계’는 과거에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을 실제 사례와 함께 보여준다. 그중에서 1997년 세계 최강의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수퍼컴퓨터 딥블루와 6번을 겨룬 끝에 1승 3무 2패의 전적으로 진 사례는 유명하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저 바깥에도 지적 생명체가 있을까’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기 위한 세티(SETI: the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의 현장을 보여준다. 글쓴이는 ‘지능을 가진 외계생명체와 접촉할 가능성은 지구보다 35배 더 큰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면서,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자고 주장한다. 외계의 다른 문명 역시 초신성이라는 이례적인 현상에 주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초신성을 잘 볼 수 있는 지구 주변의 영역에 집중적으로 신호를 보내면 일종의 ‘자연적 횃불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동호인 차원에서 세티가 이뤄지고 있는 ‘SETI@home’사이트에서 스크린세이버를 다운받아 구동시키면 한국에서도 세티에 동참할 수 있다.

이 책을 기획·편집한 필립 얌은 지능을 ‘복잡성을 처리하고 유용한 맥락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했지만, 지능을 둘러싼 열띤 논쟁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이 지능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현대사회가 중시하는 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능이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는 것은 과학적 논의를 넘어 인종차별과 문화적 편견, 윤리적 문제 등 사회·문화적 논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지능을 다루는 문제와 관련해 그 자신이 천재로 평가받았던 아인슈타인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만년의 회상》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능을 우리의 신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인격이 아니라 힘센 근육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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