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08. 2001 | IMF 이후 문학시장의 침체와 함께 순수문학의 위기가 언급된 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전통적인 등단과정 대신 PC통신과 인터넷 독자층의 조회 수에 힘입은 통신작가의 탄생, 판타지소설을 위시한 장르소설의 성행 등 디지털문화를 기반으로 한 독자와 작가의 등장은 문단 한편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다른 한편에서는 변화의 바람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새로운 문학의 필요성이 빈번하게 제기된 반면 사이버문학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분분하고, 전범이 될만한 하이퍼텍스트 문학도 부재한 상황이라 이런 논의는 추상적인 결론으로 귀결되거나 변화에 대한 강박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강박증상의 단적인 예는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문학분과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학평론가 정과리씨가 책임위원을 맡은 프로젝트 ‘언어의 새벽(http://eos.mct.go.kr )’ 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수영의 시 <풀>의 한 구절을 씨앗글로 삼아 문인들이 각자의 관점으로 덧글을 쓰고, 거기에 다시 네티즌이 참여해 글을 올리는 ‘언어의 새벽’은 순수문학과 하이퍼텍스트의 만남을 시도한 실험무대였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개념을 단순한 릴레이 글쓰기 정도로 접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뒤이어 2001년 북토피아가 인터넷MBC와 함께 개발한 하이퍼텍스트 소설 ‘디지털 구보 2001’는 이혼녀 구보, 그녀의 애인 이상, 구보의 어머니 등 세 명의 시점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네티즌의 이어쓰기가 가능한 점 외에도 음향, 문자, 음악, 동영상 사이트 등 공감각적 감상을 돕는 링크 1천여 개로 ‘언어의 새벽’보다 한 차원 진보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학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비교적 심도 있게 다룬 책으로 조지 P. 랜도우의《하이퍼텍스트 2.0》(여국현·이동연·박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류현주의 《하이퍼텍스트문학》(김영사), 배식한의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책세상)등이 있지만 해외 사례에 치중하고 있으며, 국내 실정을 분석하려 해도 발표된 작품이 거의 없어 사례를 수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에 대한 강박증
‘언어의 새벽’이 새로운 문학형식을 실험하는 장이었다면, 비슷한 시기에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한 ‘2000 인터넷 문학세미나’는 신경림, 현기영, 김용택, 임철우, 정호승 등 중견작가와 김영하, 송경아, 김현영, 박성원, 김종광 등 젊은 작가의 발언이 어우러지고 평론가들이 대거 참여해 한국문학의 제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토론의 장이었다. GVA(Global Virtual Academy) 방식을 이용해 총 26회에 걸쳐 인터넷상에서 진행된 세미나는 발제자 1명과 토론자 3명을 기본으로 하고, 화상접속이 가능한 네티즌의 질의응답을 포함시켰다. 이 세미나의 결과를 묶어 펴낸 책이 최근 발간된 《우리 문학이 가지 않은 길》(자우출판사)이다. 세미나의 주제는 문학언어와 멀티미디어의 관계, 사이버문학의 현황과 전망, 문화정책과 그 대안 등 급변하는 문학현실을 반영한 것부터 통일시대의 문학 운동, 정치대중화시대의 문학, 노동자 대중의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이 넓다. 학술적 성격보다 담화에 가까운 가벼운 글이지만, 한국 문단의 고민을 폭넓게 조망하려는 노력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편 한양대학교 강사 김진량씨가 펴낸 《인터넷, 게시판 그리고 판타지소설》(한양대학교 출판부)은 PC통신망에서 시작된 게시판 형식의 소설이 인터넷에서도 게시판 형태로 유지되는 것에 주목하면서 디지털 서사 양식을 분석하는 틀로 ‘게시판소설’을 제시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게시판소설 중에서도 10∼20대 연령층의 소아적 욕망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한 판타지소설이다. 그에 따르면 게시판소설은 근대적 서사양식으로서의 소설 전통이 매체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탄생된 새로운 텍스트형식이며 매체 그 자체다. 서사는 스토리, 작중 인물, 시간적 순서 등 기존의 관습을 통해서만 진행되지 않고, 게시판의 인터페이스 조작,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 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독자, 작가, 비평가가 역동적인 관계의 장을 형성하는 차세대 문학
김진량씨는 게시판소설의 장르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독자, 작가, 비평가가 역동적인 관계의 장을 형성하며 소설을 집단 서사 양식으로 바꿔놓은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 변화 과정에서 문학장르가 문학컨텐츠로 변화하고 기존 장르의 관습이 와해되는 것을 김진량씨는 ‘서사의 컨텐츠화’로 명명한다.
디지털 문화가 문학을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변화시키리라는 예측은 과장된 신화일 것이다. 하이퍼픽션은 통합장르적 성격을 지니고 저자와 독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특성을 갖지만, 이는 서사 방식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한 가지 이야기로 소설, 시뮬레이션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형식의 변주가 가능하고, 이것이 독자 또는 관람자에게 먹혀들 수 있다는 사실은 형식보다 내용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강박증상의 단적인 예는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문학분과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학평론가 정과리씨가 책임위원을 맡은 프로젝트 ‘언어의 새벽(http://eos.mct.go.kr )’ 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수영의 시 <풀>의 한 구절을 씨앗글로 삼아 문인들이 각자의 관점으로 덧글을 쓰고, 거기에 다시 네티즌이 참여해 글을 올리는 ‘언어의 새벽’은 순수문학과 하이퍼텍스트의 만남을 시도한 실험무대였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개념을 단순한 릴레이 글쓰기 정도로 접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뒤이어 2001년 북토피아가 인터넷MBC와 함께 개발한 하이퍼텍스트 소설 ‘디지털 구보 2001’는 이혼녀 구보, 그녀의 애인 이상, 구보의 어머니 등 세 명의 시점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네티즌의 이어쓰기가 가능한 점 외에도 음향, 문자, 음악, 동영상 사이트 등 공감각적 감상을 돕는 링크 1천여 개로 ‘언어의 새벽’보다 한 차원 진보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학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비교적 심도 있게 다룬 책으로 조지 P. 랜도우의《하이퍼텍스트 2.0》(여국현·이동연·박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류현주의 《하이퍼텍스트문학》(김영사), 배식한의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책세상)등이 있지만 해외 사례에 치중하고 있으며, 국내 실정을 분석하려 해도 발표된 작품이 거의 없어 사례를 수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에 대한 강박증
‘언어의 새벽’이 새로운 문학형식을 실험하는 장이었다면, 비슷한 시기에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한 ‘2000 인터넷 문학세미나’는 신경림, 현기영, 김용택, 임철우, 정호승 등 중견작가와 김영하, 송경아, 김현영, 박성원, 김종광 등 젊은 작가의 발언이 어우러지고 평론가들이 대거 참여해 한국문학의 제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토론의 장이었다. GVA(Global Virtual Academy) 방식을 이용해 총 26회에 걸쳐 인터넷상에서 진행된 세미나는 발제자 1명과 토론자 3명을 기본으로 하고, 화상접속이 가능한 네티즌의 질의응답을 포함시켰다. 이 세미나의 결과를 묶어 펴낸 책이 최근 발간된 《우리 문학이 가지 않은 길》(자우출판사)이다. 세미나의 주제는 문학언어와 멀티미디어의 관계, 사이버문학의 현황과 전망, 문화정책과 그 대안 등 급변하는 문학현실을 반영한 것부터 통일시대의 문학 운동, 정치대중화시대의 문학, 노동자 대중의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이 넓다. 학술적 성격보다 담화에 가까운 가벼운 글이지만, 한국 문단의 고민을 폭넓게 조망하려는 노력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편 한양대학교 강사 김진량씨가 펴낸 《인터넷, 게시판 그리고 판타지소설》(한양대학교 출판부)은 PC통신망에서 시작된 게시판 형식의 소설이 인터넷에서도 게시판 형태로 유지되는 것에 주목하면서 디지털 서사 양식을 분석하는 틀로 ‘게시판소설’을 제시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게시판소설 중에서도 10∼20대 연령층의 소아적 욕망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한 판타지소설이다. 그에 따르면 게시판소설은 근대적 서사양식으로서의 소설 전통이 매체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탄생된 새로운 텍스트형식이며 매체 그 자체다. 서사는 스토리, 작중 인물, 시간적 순서 등 기존의 관습을 통해서만 진행되지 않고, 게시판의 인터페이스 조작,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 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독자, 작가, 비평가가 역동적인 관계의 장을 형성하는 차세대 문학
김진량씨는 게시판소설의 장르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독자, 작가, 비평가가 역동적인 관계의 장을 형성하며 소설을 집단 서사 양식으로 바꿔놓은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 변화 과정에서 문학장르가 문학컨텐츠로 변화하고 기존 장르의 관습이 와해되는 것을 김진량씨는 ‘서사의 컨텐츠화’로 명명한다.
디지털 문화가 문학을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변화시키리라는 예측은 과장된 신화일 것이다. 하이퍼픽션은 통합장르적 성격을 지니고 저자와 독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특성을 갖지만, 이는 서사 방식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한 가지 이야기로 소설, 시뮬레이션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형식의 변주가 가능하고, 이것이 독자 또는 관람자에게 먹혀들 수 있다는 사실은 형식보다 내용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은 몸 안에 깃든 영원한 삶의 욕망-정은정 사진전 (0) | 2001.10.12 |
---|---|
산모와 아기 중시하는 대안적 출산문화 (0) | 2001.10.09 |
영국 개념미술의 실험 무대 ― 런던 언더그라운드전 (0) | 2001.09.27 |
과학으로 해부한 지능의 신비 ― 《타고난 지능, 만들어지는 지능》 (0) | 2001.09.24 |
절망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힘, 사랑-《자기 앞의 생》 (0) | 2001.09.24 |
댓글